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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3 23:54:50 조회 : 280         
유튜브 강의 (224강, 225강) 인생이란, 본향 180313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224강       음성           동영상


225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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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8.64) 18-03-15 13:43 
224강-YouTube강의(인생이란)180313-이 근호 목사

 

224강, 제목은 ‘인생이란’입니다. 인간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모든 자기 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끝이 오기 전에 인생을 논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대목을 무시한 거죠. 끝까지 가봐야 인생을 아는데, 인생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 그 순간에 이미 그 사람은 살아있는 상태죠. 죽은 상태가 아니고.

 

그럼 죽고 난 뒤에 인생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죽고 난 뒤에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구태여 이야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드라마에서 중반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혹시 실수를 해서 마지막 회를 다 봤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 드라마를 보는데 재미가 없어서 못 보죠. 시시해진다니까요. 그리고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에게 나중에 반전이 있다고 미리 알려주면 그 사람도 그 드라마를 보는데 재미가 없잖아요.

 

성경에서 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인간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못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분만이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우리는 누구를 존중해야 되겠습니까? 아직 인생이 남아있는 옆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되겠어요? 인생을 다 끝내고, 인간의 인생에 대해서 평가할만한 그런 심판주의 의견을 따라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말씀을 따라야 되죠.



이 성경말씀에서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조성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생은 이렇다, 라는 그 개념을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겁니다. 우리 좋아라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하시는 거기에 맞추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해서 살게 되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에 보게 되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라고 나와 있죠. 그런데 장사를 해서 이익을 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인생에 대해서 아시는 우리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격려를 해주실까요? 아니면 후원을 해주실까요?

 

그 다음 14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격려도 하지 않고 후원도 하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그야말로 초치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나님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이익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어떻게 도와주시렵니까? 제 일이 잘 풀리겠습니까?”라고 우리는 묻죠.

 

마치 점쟁이 집에 가서 부채도사한테 “내 일이 잘 되겠느냐? 못 되겠느냐?”라고 이렇게 궁금해서 묻는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답변은 뭐냐 하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해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시점부터 그 나머지 모든 인생의 끝 날을 전부 다 뭐로 보느냐 하면 ‘내일’이라는 개념 안에 다 집어넣어요. 내일에.

 

내일은 모레도 내일이고 십년 후에도 내일이고 백년 후에도 내일이 되는 거예요. 내일을 모른다는 것은 전체를 모른다는 말이고, 인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을 니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나 목표가 설정된다는 거예요.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어느 도시에 가서 이익을 보기 위하여 장사를 해볼까? 어떻게 살아볼까? 라는 이야기가, 발언이 나온다는 말은 나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하고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나온 이야기를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인생이라는 것은 안개와 같아서, 안개라고 하는 것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없는 거예요. 소멸되는 거예요. 소멸되기 위해서 잠시 있는 겁니다. 잠시 있다고 해서 있다는 말을 하면 안 돼요. 잠시 있더라도 없어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이에요. 뭐 어떻게 시원하지 않습니까? 기분 좋죠? 갑자기 삶의 무게가 확 달아나죠?

 

둘이 싸운다는 말은, 부부가 싸운다는 말은 없어질 안개끼리 싸운다는 말이에요. 부부가 이혼했다는 말은 안개가 안개끼리 이혼한 거예요. 이게 인생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의도적으로. “주님! 인생이 무엇입니까? 알려주세요.”가 아니라, “너희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뭔가 있고 그걸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데 없어질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13절에서 어느 도시에 가서 이득을 보리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그것은 바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해서 모은 것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인생이라고 하는 것을. 근데 그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이야기다 이 말이죠. 과거. 과거 것을 끄집어내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회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은 무의식적이지만, 그걸 회상할 때는 무의식이 아니고 의식으로 변해요. 의식으로 변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것은 조작이 가능해요. 편집과 조작과 위반과 거짓과 오버와 구라죠. 거짓말. 거짓말이 추가가 되는 것이 회상입니다. 현재에 자기 자신을 의미 있는, 가치 있는 것으로 보기 위해서 부풀어지는 요소까지 의식에서 해요. 의식세계에서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런 회상을 하면서 기억창고에서 필요한 것만 끄집어내는 이유가 뭐냐 하면, 지금 자기가 손해를 보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서 유기체가, 인간의 몸이 자기 방어체제의 일환으로 그걸 끄집어내는 겁니다. 자기 방어체제. 근데 그 자기 방어체제가 이게 어설퍼요. 이게 완벽하게 조작이 안 돼요.

 

그래서 자기 방어체제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새나가서 말을 안 듣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꿈이라고 이야기하고, 트라우마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근사하게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데, 그 포장지가 군데군데 구멍이 났어요. 그래서 원치 않는데, 어릴 때 받았던 그 마음이 상처가 도져서 욱하는 성질로 자신의 혼돈스러움과 괴물스러움을 타인에게 가하게 되죠. 타인에게 가하는데 여의치 아니하면 자기 자신에게 타격을 가하는데, 그 결정적인 타격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기분 좋은데 자살한 것 봤어요? 너무 기분 좋아서 자살합니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죽겠다는 말은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근데 그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바로 자신의 지금 능력으로 자기의 아픔을 다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정답을 내 쪽에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가 근사하게 만들어보겠다는 거예요.

 

그런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바로 잠시 나타나 소멸될 수밖에 없는, 잠시 등장한 환상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은 내가 조성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닙니다. 주께서 몰아세운 겁니다. 몰아세운 이유는, 몰아세운 주님께서 결국 우리로 하여금 소멸시킬 그 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소멸될 인생이지만 누가 만들었다? 주께서 만들었다는 것을, 이 점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미아(IP:122.♡.178.64) 18-03-15 13:45 
225강-YouTube강의(본향)180313-이 근호 목사

 

225강, 제목은 ‘본향’입니다. 고향인데 고향이 아니고 본향이에요. 본향. 본향에서 본향으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향은 태어난 곳, 본향은 한 번도 구경도 못한 곳이 본향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고향을 잊어버려라! 너는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본향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 속에는 기껏해야 처음 기억이 고향의 기억이지 본향의 기억이 아니잖아요. 본향은 누구의 고향이냐 하면 예수님 고향이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의 체험이, 예수님이 가졌던 기억이 우리 내부에 삽입이 될 경우에만 우리는 고향을 포기하고 본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 된다는 말이 중요해요. 우리가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우리는 구경도 못했어요. 이미 그 본향에 가신 주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성령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겁니다.

 

제가 능력이라는 말을 했는데, 능력이라는 말은 이번 주 주일 낮 설교에 잠깐 언급을 했는데,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별다르게 보이지 않지만 다른 것, 똑같지 보이지만 달리 보이는 것, 이게 안에 능력이 있어서 그래요. 능력은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것이 아니고, 똑같이 살아가도 괜찮아지는 것이 능력이에요. “괜찮다.”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능력을 발휘하려고 그렇게 어설픈 연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그대로 살아가도 내가 만든 능력이 아니기에, 주님이 우리를 고향에서 본향으로 돌려놓는 능력이기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내가 만들지 않는 능력이 발휘가 되는데, 그 능력은 방향성을 갖고 있어요. 수학에서 그걸 벡터vector라고 해요. 물리학에서 스칼라하고 벡터로 둘을 나누고 있는데, ‘스칼라’라고 하는 것은 그냥 힘의 덩어리지만, ‘벡터’라고 하는 것은 힘은 있되,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힘을 벡터라고 이야기합니다.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하거든요. 물리학 수학에서 화살표로 표시하는데, 그런 벡터적인 힘을 갖고 있어요. 당연히 우리는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소식이 들려왔어요. “니 이제 하꼬방(판잣집)같은 그 집에서 이사해야 된다. 아주 부잣집으로 간다. 부잣집으로 가는데, 그 집은 니가 구경도 못했지만 내가 이미 그 집을 니 이름으로 등기해놨으니까 이제 들어가자. 이삿짐 실어라. 가자!”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자기가 살던 정든 집을 버리고, 어떤 사람이 이야기한 새로운 자기 집, 내 집, 그러니까 본향 그 정도 쯤 되겠죠. 부잣집으로 간다고 해서 가는데, 가는 길이 이상해. 자꾸 길이 좁아요.

 

그리고 갈수록 뭔가 근사한 집이 나와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가요. “길을 잘못 들었나? 운전사 양반 제대로 가는 겁니까?” “내비게이션 잘 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상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운전사가 천사에요. 천사가 운전을 하는데, 또는 성령께서 운전을 하는데, 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운전을 하는데, 갈수록 구약적으로 말하면 물이 없고 양식이 없어요. 트럭 뒤에 탄 사람들은 난리도 아니에요. 원망하고, 물 없다고 물 내놓아라, 양식 없다고 양식 내놓으라고 하는데, 지금 벡터, 하나님과 동승하고 있는 그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하고 내비가 찍힌 대로 가는 거예요. 구름기둥과 불기둥대로.

 

가는데, 이상해요. 양식이 없고 물이 없다 이 말이죠.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어요? 인간이 본향을 가려면, 본향을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영원히 거주해야 하거든요. 성도는 서식지가 달라야 돼요. 놀던 물하고 달라야 된다고요. 그래서 보통 이사는 자기 몸이 변하지 않고 그냥 짐만 들어가면 되지만, 하나님이 마련한 집에는, 그 집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도 달라져야 해요. 돈으로 살던 인생, 떡으로 살던 인생, 인기로 살던 인생, 세계부귀영화가 그렇게 탐이 났던 그 인생이, 그게 시시한 드라마같이 느껴져야 해요. 재미도 없고 시시하고.

 

그런데 재미도 없고 시시한 가운데서 다시 드라마가 재미가 있고, 재미나고,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어야 돼요. 왜? 시시한 재미로 보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재미로 보는 거예요. 북한에서 핵을 준비했다던 김정은의 큰소리가 그렇게 우습고,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거예요. “아이고, 많이도 만들었다. 고마워라.” 이런 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그 모습이 코미디로 느껴지는 겁니다. 하나의 개그로 느껴지는 겁니다. 농담이죠. 농담.

 

만약에 여러분 가운데서, 졸지마세요. 이거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20대 당시에 어떤 여자를 미투(#Me too)해가지고, 당신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막 고발할 때, 지금 잠이 올 이야기가 아니죠. 그렇게 이야기할 때, 아휴! 그게 굉장히 재미있어야 돼요. ‘아마 내 기억으로는 그것보다 더 많을 걸!’ 이래 되어야 돼요. 이래 되어야 된다고요. 이게 본향 가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게 본향 가는 사람의 특징이에요. ‘아니, 더 많을 텐데.. 왜 그 여자만 고발을 하지?’ 이런 식으로.

 

세상 자체의 심각한 문제가 우리는 웃기는 문제에요. ‘아! 내가 이렇게 재미나게 살았구나!’ 십년 전에 돈 떼먹고 도망갔는데, 돈 빌려준 사람한테 걸렸어요. “니 돈 갚아라.” “아이고 간지러워라.” 이런 식으로. 멱살 쥐고 흔드는데도, “그래. 돈 빌려줬지? 내가 그때 그런 재미난 일을 했었나?” 돈 많은 사람이 재미 하나도 없어야 돼요.

 

이게 뭐냐 이 말이죠. 빌립보서 3장 20절에 나오죠.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개념을 주께서 만들어내요. 이 개념은 절대로 우리가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우리 안에 있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너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이 말이죠. 이곳을 떠나야 되고 니가 살았던 고향은 잊어버려라.

 

니가 가졌던 능력은 그냥 가진 능력이 아니고, 능력이 뭔가 너를 일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것은 그냥 목욕탕에서 벗겼던 때 같은 것. 물론 그 때는 나의 땀에서 나왔겠죠. 나에게서 나왔지만 어쨌든 더러운 때 같은 것. 이제 그것을 말끔하게 씻어줄, 샤워해야 될, 진득진득하고 습기 찬 이 세상을 벗어나서 산뜻하고 깨끗한 몸이 허락된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본향을 생각하면서, 그 능력 속에서 자기 소원을 새삼 뽑아냈죠. “죽여주옵소서. 어서 속히 죽여주옵소서.” 속히 죽여 달라고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뭐 도피하겠습니까? 도피하면 오래 살 가능성이 있어요. 그냥 지금 하나님이 몰아세우신 그 장소가, 본향 가는 최후의 장소라고 여기고, 그 장소에 감사해야 돼요.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만 두지 마세요. 어떤 미련도, 아쉬움도, 회환도, 안타까움도, 그런 것은 다 내 몸의 때같이 여기고, 로켓 쏘아 올릴 때 껍데기 벗겨지잖아요. 알맹이만 간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속사람만 간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무게를 느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0그램이에요. 0g. 새털 같은.

 

그렇게 마음 불편하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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