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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8 00:07:41 조회 : 272         
유튜브 강의 (230강, 231강) , 진리와 즐거움 , 지옥의 증거 180417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230강       음성                동영상


231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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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8.64) 18-04-18 22:51 
230강-YouTube강의(진리와 즐거움)180417-이 근호 목사

 

230강, 제목은 ‘진리와 즐거움’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라는 것은 일단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인간들 모두를 다 모르잖아요. 인간이 천지를 창조 안 했으니까.

 

인간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자연세계를 만드신 어떤 분, 그 분과의 개인적인 관계도 자기 운명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근데 신을 찾는 것을 오늘날 용어로 하게 되면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종교. 근데 종교라는 것이 오늘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모든 세상의 민족들 위에 종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각자 신을 믿었다 이 말이죠.

 

그래서 보통 나라들 보면 건국신화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건국신화. “나라를 건설할 때, 신의 도움으로, 신의 특별한 배려로 우리민족은 이 땅에 터 잡고 국가가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있었던 모든 왕들은 우리가 믿는 신의 특별한 관련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왕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되고, 통로가 되고, 그 임금님이 우리 민족을 위한, 우리나라를 위한 제사장 역할을 제대로 해주게 되면, 우리나라는 신으로부터 복 받는 나라가 된다.”라고, 다들 그렇게 종교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이념이 우리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고 다 있죠. 그렇다면 남아있는 문제가 뭐냐 하면, 우리가 믿는 신과 일본이 믿는 신, 중국이 믿는 신, 뭐 필리핀이 믿는 신, 베트남이 믿는 신이 다 있을 게 아닙니까? 자기들의 건국신화가 있잖아요. 그것이 누가 진짜 실제적인가를 알려면 붙어봐야 되는 겁니다. 전쟁을 해봐야 되겠죠.

 

그래서 고대에서 전쟁할 때는 평소에 자기가 섬기던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전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가 믿는 신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맞다.”라는 것을 승리로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요즘말로 한다면 내가 신을 믿고 난 뒤에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복이 오고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 말은 뭐냐 하면 내가 찾는 신이 제대로 된 살아있는 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러면 나한테 복주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구태여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죽이 잘 맞고, 지금 하는 일이 잘 되는데, 만사형통한데 종교를 바꿀 하등의 이유가 없겠죠.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예수님이라는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복을 주시려나, 하고 우리가 기대하게 되겠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많은 사람이 찾는 그 길, 잘 될라고 하는 그 길은, 이게 넓은 길이 되어서 마지막은 멸망으로 간다는 겁니다. 멸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말은,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이야기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이 되고, 동의가 되고,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래서 대중들에게 의의(뜻이 의심스러운 것)걸 필요가 없는,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시비 걸 수 없는, 타당성 있는 하나님이죠. 그 하나님을 누구나 다 신봉하는데, 그게 가짜라는 이야기에요.

 

그게 바로 지옥으로 가게 된 종교라는 것이 예수님 쪽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영생 얻는 길은 좁은 길이라는 거예요. 찾는 이가 없죠. 그러니까 그 말씀만 딱 떼놓고 보게 되면 대다수가 기피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일 수가 굉장히 농후해지는 겁니다. 참된 신이냐, 아니냐를 그냥 가까운 사례를 들고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이 우르르 가게 되면 백퍼센트 가짜고,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면 참된 신일 가능성이 많죠.

 

이걸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1절에 “내가 사람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라는 언급을 해요. 편지 초반부터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이래 되어 있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이래 되어 있단 말이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소개한 그 하나님께서 누굴 앞장세운다는 말이냐 하면,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분을 앞장세워서 이야기할 때 그것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죠.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죠? 인기 있어서 돌아가셨습니까? 인기가 없어서 돌아가셨습니까? 인기 없어서 돌아가셨잖아요.

 

왜 인기가 없죠? 사람들이 기대했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고대했던, 그것과는 다른 정보가 아니라 정반대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분 나쁜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보면,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라고 했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신 이유가 여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먼저 첫 번째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기뻐하는 것을 예수님은 이미 익히 아신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그걸 아시면서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아니하시고 반대로 나가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죽임 당하신 분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분을, 아들을 앞장세우시고. 지금 세트가, 구성요소가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들이 뭘 좋아하고 어떤 종교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알고 있으면서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뭘 선별하느냐 하면은,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가셔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8절에,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사람을 낚으려면 대중들 가운데서 따로 사람을 데려와야 돼요. 베드로는 주님한테 낚였지만, 앞으로는 베드로를 통해서 또는 안드레를 통해서, 베드로가 낚인 것처럼 이 세상에서 또 누구를 낚는 거예요.

 

낚는다는 말은 기존의 기판, 기존에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데서 따로 분리해 떼 내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면 기존의 그렇게 베드로처럼 뽑혀 나온 사람은, 뽑혀 나오면서 물끄러미 자기가 전에 살던 곳을 보겠죠. 보게 되면 지금 뽑아내신 주님의 취지와 주님 앞에 뽑히기 전에 내가 원했던 하나님, 내가 원했던 모든 생활하고는 너무나 차이가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아주 기쁘게, 기쁘게 여기겠죠. 아! 뜯겨나갔으니까. “내가 전에 있었던 곳에 그냥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같이 휩쓸려서 멸망의 길로 갈 뻔했구나!” 감사하겠죠.

 

그 뜯어낼 때의 방식이 뭐냐 하면은, 이게 종교가 아니고 오직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오락도 아니고 쾌락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십자가는 우리가 제일 기피하는 그 죽음, 죽음의 힘, 그 죽음의 힘이,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그 죽음이 우리에게 덮쳐서,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에 함몰되어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되는 겁니다.
 이미아(IP:122.♡.178.64) 18-04-18 22:52 
231강-YouTube강의(지옥의 증거)180417-이 근호 목사

 

231강, 제목은 ‘지옥의 증거’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지옥이라 하면, 지옥이라는 것은 살아있을 때는 지옥이 아니고 죽어서 가는 곳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 달랑 두 군데밖에 없어요. 지옥과 천국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혼자 십자가를 지지 않고, 십자가 양편에 너무나 대조적이고 갈 길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예수님 달리고 두 사람이 달렸다.” 보통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 달리고 양쪽에 예수님이 품고 있던 두 개의 속성이 예수님과 한 조를 이루어서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이래보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계셨다 이 말이죠. 예수님을 기준해서 쫙 갈라진 거예요. 모든 세상은 사람의 개성보고 갈라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품고 있던 주님의 속성으로 인하여 그게 갈라지는 겁니다.

 

그러면 지옥이 뭐냐 할 때에, 나쁜 짓 하는 사람이 간다고 이래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속성 가운데서 저주하시고, 영원히 심판을 행하시고, 분노하시는 그 속성의 대상자들이 모인 곳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는 대상이 지옥가고, 반대로 천국 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속성가운데서 긍휼을 입은 사람, 긍휼이라는 것은 불쌍히 여김을 받은 거예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본인의 개성이나 자질이나 행세가 따로 있지만, 일체 그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책망하거나 그걸 책임추궁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이 살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뭐냐, 책임 추궁을 안 당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죠. 복되죠. 하는 짓이 자기가 봐도 이거는 맴매 맞아도 싸다고 하는데, 묻지도 않겠다는 거예요. 일체 그거에 대해서 묻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천국 가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지옥 가는 사람들이 나쁜 짓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양쪽 다 똑같은 존재인데, 이쪽은 하나님의 저주의 속성을 담았고, 이쪽은 하나님의 긍휼의 속성을 담은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5장에 보면 이것을 그릇으로 비유해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창세기에 봐도 야곱은 사랑받는 자요, 에서는 주님으로부터 미움 받는 자죠. 쉽게 이야기해서 밉상이다. 뭘 해도 밉상이에요. 착한 일 해도 밉상이고, 주께 기도해도 밉상이고, 십일조해도 밉상이고, 목숨 바쳐 순교해도 밉상이에요. 이리 봐도 밉상, 저리 봐도 밉상, 하는 행동 봐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행동을 해도 밉상으로 결론지어지는 행위를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그 밉상 짓 하는 특징이 있어요. 밉상 짓 하는 공통점이 뭐냐 하면, 꼭 자기가 주인공이에요. 옆에 있는 강도, 지옥 간 강도가 예수님한테 한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메시야이거든 지금이라도 우리들을 풀어주면 내가 당신을 믿겠다.”라는 거예요. 누구 위주죠? 자기 위주죠. 그걸 누가 타박하느냐 하면, 구원받은, 그 날 밤에 천국 간, 똑같은 강도가 타박을 해요. “이 사람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지.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 분은 죄 없으신 분이 이렇게 달렸잖아!”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지금 구원받지 못한 강도는 자기만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만. 최종적으로. ‘내가 팔자 피자. 내가 잘 되자.’ 이거만 생각하는 반면에, 그 구원받은 강도는 자기가 최종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시작은 바로 죄 없으신 주님으로부터 해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주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긍휼로 주어지니까, 자기 시작을 포기하고 긍휼을 주신 분이 자신의 근원, 뿌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뿌리라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뿌리가 되고, 원천이 되고, 주님 증거 하라고 내가 이 땅에 산다는 겁니다. 시작점이 서로 다르죠. 그야말로 사나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을 강도는 강도 식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이 땅은 뭐냐 하면 지옥을 꼭 가봐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천국을 꼭 가봐야 천국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아주 희한하고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도록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주님의 긍휼을 언급하고 고백하는 자들이 출몰한다는 겁니다. 아! 이거는 이상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기위주로 태어나거든요. 자기위주로. 그게 모든 인간의 공통점인데, 그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런데, 안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건 뭔가 주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자예요. 이 세상이 아주 엉망이고 개판이기 때문에 지옥이 아니라, 오늘 강의의 초점은 뭐냐 하면 그들과 달리 세상을 보고, 달리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이 출몰했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그거 빼고 나머지기 여집합(전체 집합에는 속하지만 부분집합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 다 지옥입니다.

 

그러니까 천국 가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면, 지옥도 티가 안 나게 되어 있습니다. 표 안 나게 되어 있어요. 뭐, 그렇고 그런, 꽃 피고, 봄여름가을겨울, 그렇게 늘 평온하게 잔잔한 일상이 연속되는데, 뭐 이런 괜찮은 지옥이 다 있느냐, 이 말이죠. “점잖은 지옥인데, 이건 지옥이 아니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죽어보면 알겠지.”라고 생각을 하는데, 죽어보면 아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강도 같은 사람이 출몰했다는 말은, 이미 천국이 출몰했다는 말은 그 짝이 되는 지옥이 이미 벌써 여기에 상주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옥이다!”라고 소리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과격하게 구태여 할 필요도 없이, “오늘도 하루하루 주님의 불쌍히 여김으로, 여김을 받고 저는 살아갑니다. 저를 뭘 보고 긍휼히 여기겠습니까? 주님의 자신의 행하심을 근거로 해서, 거기서 흘러나온 긍휼이 저를 덮쳤으니까, 저는 주님만이 저의 기본입니다. 사나죽으나 오늘밤 죽더라도 주님의 낙원에 있게 됩니다.” 그 고백을 하게 되면, 천국이 등장했으니까 지옥은 등장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짝을 이루어서 등장하니까. 왜? 둘 다 공히 한 분의 속성이니까요.

 

긍휼의 속성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에요. 긍휼의 속성 맞은편에 반드시 “긍휼 없음!” 아! 잔인한 거예요. “봐주는 것 없음!”만큼 잔인한 게 없어요.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고 하는 이거는 아주 조지겠다는 거예요. “니가 행했으니까 내가 너에게 책임을 묻겠다는데 니가 무슨 할 말이 많아? 니가 그 짓 했잖아? 그러니까 니가 값을 당해야지.” 이거는 아주 치명적입니다. 결정타고. 그 사람의 운명이 지옥이에요.

 

근데 옆에 있는 강도가 “저도 똑같은 짓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니는 나의 긍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 말이야.”라고 했을 때에, 어떤 여인처럼 그 비싼 향수까지 아낌없이 바치면서, 고맙다고 울면서 주의 발을 씻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자기가 받은 게 있는데.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했잖아요(눅7:47).

 

우리가 그 사랑을 생각한다면, 제발 인생 살면서, 지옥인 세상에서 살면서, 큰 것 받아놨는데, 쓸데없는 것 가지고 구시렁구시렁(못마땅하여 잔소리나 군소리를 자꾸 되풀이하다)불평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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