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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23:55:50 조회 : 189         
유튜브(240강, 241강) 하나님의 지령, 기도와 성전 180703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240강      음성             동영상


241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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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0.138) 18-07-04 18:30 
240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지령)20180703-이 근호 목사

제 240강, 제목은 ‘하나님의 지령’입니다. 지령이라고 할 때는 남의 나라에 스파이로 갔을 때 본부로부터 명령과 사명을 부여받고 지시받는 그 수단을 바로 지령이라고 하죠. 지령이 된다면, 철저하게 개인의 의사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한테는 무시당하는 겁니다. “내가 나름대로의 이런 계획을 가지고 했습니다.”라고 하는 그 계획은 지령이라는 그 명령 앞에 어울리지 않죠.

지령은 근원적으로 명령과 지시가 있고, 나중에 그 명령을 더 깊이 들어가 보게 되면, 나라는 존재자체는 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라는 그런 언질이에요. 사람이 누구로부터 지시와 명령이 없으면 본인의 인생을 본인이 꾸려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굉장히 신나고 즐겁게 보이지만, 자기 인생이 어떠한가의 측정을 누가 해야 하느냐 하면 본인이 내려야 돼요.

인생 잘 살았다, 못 살았다, 라는 것을 본인이 내려야 이게 편합니까? 누가 일방적으로 판정을 해주는 것이 편할까요? 누가 일방적으로 판정을 해주는데,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고, 이미 지령을 내리고 지령을 받고 하는 그 관계자체가 아주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아주 하자 없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근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이 끊어진 상태에서 한 순간에 출세했다고, 성공했다고, 난 너보다 더 낫게 살았다고, 너보다 더 행복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그건 본인의 판정이고, 나중에 죽어서 심판대에 섰을 때에 본인이 본인을 정답내린 그 정답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훌륭하냐를 묻는 것이 아니에요. 평소에 내 지시와 명령에 따랐느냐를 묻는 겁니다.

오늘 제목을 지령이라고 한 것은, 어떤 경유냐 하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내 동네에서 내가 살게 되면 지시와 명령이 되겠는데, 목적이 내가 살던 내 동네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변경시킨다, 잘 되게 한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든다고 한다면 이거는 지시와 명령이 되는데, 지령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가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그 동네에서 빠져나오라는 뉘앙스가 강해요.

내 동네가 아니고 남의 동네라는 그러한 의미가 강하다 이 말이죠. 몰래 잠입했을 때 지령이라는 말이 성립이 되잖아요. 몰래 잠입했을 때. 한국에서 북한으로 스파이로 갔습니다. 그때는 지시와 명령이라는 말도 괜찮지만 더 정확한 단어는 지령입니다. 니 임무수행하고 빨리 돌아오라 이 말이죠. 그곳은 니가 미련 둘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집착할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와 같이 있을 때는, 열 두 제자는 자기가 사는 동네가 하늘나라인줄 알았죠. 그래서 지시와 명령을 따르겠다고 나섭니다. 그런데 나중에 오순절에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지시와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고 지령을 부여받은 거죠. 왜냐하면 이 세상은 불로써 사라지고 타버려야 될 세상이고, 곧 그 세상이 끝나면 이 우주는 재편됩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재편돼요. 그동안 정들었던 이 세상은 없어져요.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다가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은 부활의 세계에 가기 전부터 이미 부활의 세계에 소속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거고, 빌립보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두고 그 다음부터 이 땅에 사는 것은 단순한 지시와 명령이 아니고 지령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령을 받게 되면 지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외롭지 않아요. 내가 평소에 내 인생을 마련해가는 인생 같으면 무엇과 비교가 되느냐 하면, 전에 나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든지, 동창생, 식구들, 서로 마음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니까, 예수 믿고 난 뒤에 대화가 안 되면 좀 외로움을 느끼겠죠.

근데 지령을 받게 되면 사명감이 투철하기 때문에 구태여 이 땅에 살면서 주님께서 나의 외로움을 덜라고, 외로움을 해소시키려고 지령을 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지령이 지령답게 되려면 그 까짓것 외로운 정도는, 지령을 부여받은 일이 바빠 가지고 외로울 새가 없죠.

예를 들면 영국 출신 007이 지령을 받아서 인도네시아에서 사명을 부여받을 때, 인도네시아에 여행간 것도 아니고 놀러간 것도 아니고 사건해결하려고 갔잖아요. 지령 받아서. 그러면 인도네시아에 가서, ‘나 너무 외로워!’ 이럴 새가 없죠. 007은 자기 고향이 영국이잖아요. 영국 스 파이가 인도네시아에서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디 뭐 거기에 살려고 간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뭐 “외롭습니다. 좋은 짝을 보내주세요.”하고, 본국에다가 연락하는 그런 사람 없어요. “니 할 일이나 빨리해라!” 이렇게 되겠죠.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거기에 백부장이 나옵니다. 백부장과 예수님 사이가 흔히 아는, “저 예수 믿어요. 구원해줘서 고마워요.”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다시 말해서 이 백부장의 모습 자체가 뭐냐 하면 “ 나 구원받았다. 신난다.” 이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서 지시를 하명해주시옵소서.” 이런 식이에요. 내가 뭘 해야 되는지를, 빨리 상부에서 하부로 지시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백부장은 자기의 직업이 백부장이지만, 자기의 지시는 어디에서 받느냐 하면 주님한테 지시를 받는 겁니다. 매일같이. 주님한테 지시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내 의도대로 내 인생을 선도해서 이끌고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자유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 자유가 어느 정도의 자유냐 하면, 내가 내 인생에게 지시하는데 있어서 손을 놓는 것. 내가 내 인생을 지시하는데 있어서 손 놓는 것.

내가 내 인생을 지시한다는 것의 예를 들면 뭐냐 하면, 절벽 끝에 섰을 때에 또는 가파른 길을 갔을 때에 자기가 자기를 조종해야 하잖아요. 자기 단도리를 해야 되겠죠. 정신 바짝 차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되면 낭떠러지에 떨어지니까, 결과는 뭐냐 하면 나의 죽음이다 이 말입니다.

근데 자유라는 지시명령은 내가 나를 관리 안 하기 때문에 절벽에서 손을 놓아도 상관없이 되는 겁니다. 이게 내가 받은 지령이라면. 사는데 고통스럽죠. 아프죠. 근데 아픈 것이 하나의 지령이라면, 주인이 나에게 시킨 인생이라면, 그걸 무섭다든지 두렵다고 할 근거가 나에게서 나올 수가 없죠. 무섭다, 두렵다, 어쩌나, 어떡하나, 아이고 불쌍해라,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불쌍하지, 라는 자기연민이라든지, 자기 위로를 챙길 필요조차 없죠.

왜냐하면 지령을 내리는 자와 지령을 받는 관계자체가, 그 자체가 주께서 제시하신 성공적인 관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아(IP:122.♡.170.138) 18-07-04 18:30 
241강-YouTube강의(기도와 성전)20180703-이 근호 목사

제 241강, 제목은 ‘기도와 성전’입니다. 성경에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제자들도 기도했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가르쳤고. 기도라고 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거예요. 만약에 성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래도 사람들은 기도해요.

근데 그 기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니고 부탁이라고 하는 거예요. 부탁할 때는 자기보다 못난 사람보고 부탁을 안 하죠.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될 성싶으면 부탁을 하죠. 그 부탁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설정해버리면 그 부탁이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 관계에 일방적으로 섞여 들여가고 스며들어갑니다. 그러면서 그걸 사람들은 부탁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기도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기도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타인, 타인 가운데 하나님도 계시지만, 남을 이렇게 보게 되면 자꾸 이용할 생각을 해요. 그걸 제가 부탁이라고 이야기했죠.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빼먹을 생각을 한다 이 말이죠. 본인 사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에너지를 더 얻어야 내가 더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디 좀 도움이 된다 싶으면 붙들고 부탁하는 거죠. 하나님이니까 그걸 부탁이라고 하지 않고 기도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본능이에요. 종교가 없어도 부탁하거든요. 부탁이 기도고 기도가 부탁이라 이 말이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걸 기도라고 하긴 하지만. 인간들이 타인을 요청해서 부탁하는 것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도의 내용과 한번 비교해보자 이 말이죠.

비교를 할 때, 인간의 부탁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굉장히 마음 낮추고 겸손히 가는 것 같지만, 결국 방향이 그 기도로 인하여 회수되는 그 결과를, 뭐냐 하면 본인이 처음 출발했던 그 의도가 만족스러운 상태로 충족함을 얻어서 다시 내게로 회수되는 것을 노리고 부탁, 또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간구라고 하는 것은 간곡한 부탁이 되겠죠. 간곡한 부탁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거는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만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 중요하겠죠. 그 내용이 기도하는 당사자 나에게로 회수되는 것이냐, 아니면 반대로 기도하는 나를 딱 움켜쥐고 기도했던 내 의도 자체를 무산시켜서, 주의 뜻으로 교체시켜서 주님 쪽으로 내가 회수 당하느냐, 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철없는 유치원 다니는 애가 집안 사정을 모르고 엄마 바지 붙들고 마징가제트 사 달라, 인형 사 달라, 과자 하나 사 달라고 조를 때, 부탁이죠. 왜 엄마한테 부탁하느냐 하면 엄마는 그만한 능력이 있고 자기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탁하는 거예요. 엄마한테 달라붙으니까 엄마가 잘 됐다 해서 딱 멱살 쥐고 차에 실어가지고 그 동네를 떠나버립니다. 왜냐하면 하필 그때가 그 집 이사 가는 날이에요. 애는 지금 자기가 이사 가는 생각을 못하고 지금 여기에 있으면 뭔가를, 맛있는 것을 얻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서 떼 놓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엄마 사정을 제대로 아는 철든 애 같으면 “엄마! 우리 지금 어디로 가야 되는데?” 이게 기도내용이라 이 말이죠. 그러면 “엄마가 가는 곳에 니가 가야 된다.” 이래 되잖아요. 예수님 가는 곳에 우리가 가는 거예요. 방향성이 나에게가 아니라 보다 더 큰 범위 내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도 보다 크고 넓은 안목이라는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해야 되죠. 기도하는 이유는 질책받기 위해서, 매 맞기 위해서, 우리의 식언(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음)없음을 또 다시 들통 내기 위해서 주께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기 힘드니까, ‘이거는 부탁해야해. 기도할 수밖에 없어.’라고 하는 그 순간 우리는 내 사정안에 머물러 있잖아요.

그 사정 바깥에서 주님께서 무슨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나에게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그 취지는 전혀 알바가 없어요. 내 아쉬운 것만 답답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취직시켜주옵소서. 약값이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이런 것. 평생 놀다 죽겠다. 이런 것. 그게 지령인지 모르고.

역대하 6장에 보면 솔로몬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솔로몬의 기도가 뭐냐 하면 성전을 성전답게 하기 위해서 솔로몬이 기도를 해요. 기도하는 그 내용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왜 존재하느냐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달리 이야기하면 교회가 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성전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다. 이래 되는 겁니다. 왜 성전이냐 하면 성전은 하나님 쪽에서 인간을 만나기 위해서 지정된 장소거든요. 만남의 장소에요. 그 만남의 장소에, 주님이 늘 거기에 계실만하도록 거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주님 쪽에서 우리 이스라엘에게 여지없이 퍼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라면 우리를 어떤 진창에 빠트려도 그것을 감수하고 오히려 달게 여기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내 인생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쫄딱 망하더라도 그 망한 자리에, 망한 자리 자체가 하나님의 만남의 장소가 되게 해 달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그 거지나사로가 있죠. 현실적으로 봐서 거지는 끝까지 거지에요. 아무리 하나님 믿는다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실제로 거지나사로를 만나보면 이래 봐도 거지고 저래 봐도 거지에요. 앞에서 봐도 거지고 뒤에서 봐도 거지고. 도대체 하나님이 어느 대목에서 도와줬는지가 티가 안 난다니까요.

거지나사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고 계시다 하는 것이 언제 티가 나느냐 하면 죽고 난 뒤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때, 그걸 누가 아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요. 앞집에 있던 부자가, 지옥간 자는 알아요. 지옥간 자는 얼마나 거지나사로가 부러운 자리에 가 있다는 것을, 이거는 탐을 내도 못 가는 자리, 돈을 다 때려 넣어도, 로또 일등 100번을 타도 갈 수 없는 그 자리, 그 자리에 거지나사로가 갔습니다.

그래, 거지나사로가 얼마나 배 불룩하면서 인생을 넉넉하게 살아갔던가요? 너희들은 몰라! 이런 식으로. 예수님이 그야말로 이 땅에 거지꼴로 오신 겁니다.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돼요. 누가 믿었으리요. 믿을 수가 없죠.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악마가 알아요. 귀신이 알고, 죽은 자가, 엘리야가, 모세가 알아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따라서 성령이 오게 되면 이 죽어야 아는 이 사실을, 성령이 온 사람은 바로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과 죄인의 만남은 하나님의 성전, 거룩한 복음의 자리인 것을, 그들은 아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서 느긋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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