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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00:26:12 조회 : 175         
유튜브강의 (268강, 269강), 수명 , 은닉 190305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268강         음성              동영상


269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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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0.138) 19-05-24 22:05 
268강-YouTube강의(수명)20190305-이 근호 목사

 

제 268강, 제목은 ‘수명’입니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들도 수명이 있다고 했죠. 인간은 다른 동물하고 달리 자기 수명을 자꾸 의식한다는 그 점이 차이가 좀 나요. 다른 동물 같으면 사는 대로 살면 되는데 인간은 수명을 따지는 겁니다. 죽고 난 뒤가 되게 궁금해지는 거예요. 사실은 이게 주제 넘는 일입니다.

 

사람이 죽고 난 뒤를 계산하고 그걸 예상하겠다고 하는 것은, 태어날 때 어떤 이유로 이 땅에 나타났고 어떤 식으로 평소에 살아왔는가를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일단 태어났으면 내 인생은 내 것으로 챙기겠다는 그게 너무 강렬해요. 그래서 세상 살아가면서, 그걸 있음이라고 하는데, 있다, 존재하면서 이왕 주어진 것 다시 빼앗기기가 싫은 겁니다. 이왕 주어진 것.

 

여기에, 창세기 3장에 마귀가 작용을 하죠. 인간이 태어나고 만들어질 때는 이유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은 일단 만들어졌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나 목적은 이왕 만들어진 내가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내가 초이스choice, 선택하겠다, 내가 판단하겠다, 이래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옹호를 할 리가 만무하죠. 하나님은 인간하고 협의하거나 의논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인간들의 되바라진 그러한 발상, 하나님께서는 봐주지 않죠. 만약에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냥 사료주면 재롱부리고, 그냥 키우는 대로 키우면 되는데, 어느 날 주인을 찾아와가지고 “멍멍! 내 수명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이렇게 물으면, “죽고 난 뒤에 나를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라고 주인에게 따지면, 그 주인이 그 강아지 그다음부터 키울 마음이 싹 가십니다.

 

내가 강아지를 키웠지 괴물을 키우지는 않았다 이 말이죠. 인간이 괴물이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상한 기운이 인간 속 거기에 휘감고 있음을 알고, 이미 선악과 따먹은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을 약속대로 죽입니다. 죽이되 그냥 죽이지 않죠. 그래도 하나님은 남는 장사를 해야 되니까 죽이는데 그냥 죽이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수명이라는 것을 정해버립니다. 수명을 정해버려요. 예를 들면, 창세기 5장에 보면 숱한 사람들의 수명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 수명이 나와 있다는 말은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더 오래살기도 하고 더 짧게 살기도 하려는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자기가 살려고 열심히 살든 자기가 일찍 죽으려고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든지 상관이 없이 그 죽는 때는 개인의 소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가 죽는 것이 개인의 소관이 아니에요. 죽는 것이 개인의 소관이 아니라는 말은 태어난 것도 태어난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문장을 합치게 되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기능은 정해져있다.” 이렇게 아주 단출하게 정리가 돼요. 기능이 있다.

 

자 그러면 제가 아까 이야기한대로 인간이 태어나고 난 뒤에, 마귀와 결탁을 하고 태어난 뒤에는 인간의 관심사는 뭐냐 하면 얼마나 내가 살아남느냐에 관심이 있어요. 얼마나 내가 살아남느냐.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관심이 없고, 실제로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무엇을 하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 돼요. 무슨 수단이 되느냐 하면 오래오래 내가 만족할 정도로 살고 싶다. 존재하고 싶다. 이게 인간들의 일방적인 욕심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내가 만족할 정도로 오래 사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할 것인가, 보탬이 될 것인가, 이것을 따지면서 어떤 일에 종속하고 싶은 거예요.

 

예를 들면 직업을 구할 때 수명이 대단히 짧은 직업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제가 아는 상식 내에서만 말씀드리면 수명이 아주 짧은 직업이 어떤 것이냐 하면은 금속세공사, 가죽 처리하는 곳, 그리고 반도체도 마찬가지겠지만, 합금을 만드는 그런 제조업, 고층건물을 짓는 노가다, 어떤 확률이 많은가 하면은 떨어져죽든지, 유독가스가 몸에 들어와서 누적이 되어 골병이 나든지, 그리고 환경이 너무 악화되어 오래 버티지 못해서, 그것도 골병에 해당이 되지만, 그런 것. 그리고 용광로 근처에서 일하는 것. 에어컨을 못 켜고 히터를 못 트는 그런 직업군. 주로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곳. 그리고 자외선 적외선을 생으로 쪼아대는 과수원일. 그리고 개한테 물리는 개장수.

 

그래서 옛날부터 어떤 문화든 간에 백정, 어부, 파도가 많이 쳐서 일찍 파도에 휩쓸려서 죽어요. 이런 것을 제일 하급계급이라고 본 겁니다. 이거는 인도뿐만 아니고 동양도 마찬가지고 서양도 마찬가지에요. 위험직업이에요. 그러면 그런 위험직업에 사람들이 왜 안 가느냐 하면은 월급이 적어서가 아니에요. 의외로 광부라든지 월급이 돼요. 하지만 안 가는 이유는 오래살고 싶다는 자기의 본색의 의도를 드러낸 겁니다. 근데 심지어 어떤 사회문화에서는 그런 직업을 가진 것을 저주받았다고 본 거예요. 일찍 죽으니까. 잠언서에도 나오죠. 니가 죄를 지으면 일찍 죽는다는 말씀이 있죠(잠10:27).

 

그런데 창세기 5장에 보게 되면, 기능이 뭐냐 하면 어떤 직업이고 오래 사느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식을 낳아야 해요. 어떤 자식을 낳아야 하느냐 하면은 이 땅에서 살아보려고 해도 결국은 죽는 자식. 결국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음을 전달하는, 계속해서 죽음의 힘을 후세에 전달하는 기능에 맞추어서 모든 인간은 아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창세기 5장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옵니다. 에녹이 나오죠. 21절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드셀라를 낳았고” 22절, “므드셀라를 낳은 후에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 자녀를 낳았으며” 23절,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 하였더라”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 이래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에녹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뭐가 되느냐 하면은, 죽었다. 전부 다 시체가 되었다. 그것을 배경으로 깔고, 백그라운드로 깔고 유독 거기서 돋보이는 인물이 누굽니까? 하나님과 동행해서 안 죽게 된 에녹이 돋보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을 두 종류로 갈랐다는 것으로 보시면 정리가 제대로 된 거예요. 죽었더라와 안 죽었더라, 살 수 있더라, 이것을 동시에 아담의 속성에서 뻗어나갔다. 전개했다. 이래 보시면 됩니다.

 

그 내용이 어디에 합세하느냐 하면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한,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되어 있고, 노아에게서 나온 것이 뭐냐 하면 그 죽었더라와 살았더라를 결정짓는 그 핵심내용이 언약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캡슐처럼 담기게 되는데, 그 최초의 언약의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노아입니다. 그 노아가 창세기 6장 18절에 보면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럼 오늘날 마지막 언약의 주인공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죠.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언약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부터 새롭게 만들어진 겁니다.
 이미아(IP:122.♡.170.138) 19-05-24 22:06 
269강-YouTube강의(은닉)20190305-이 근호 목사

 

제 269강, 제목은 ‘은닉’입니다. 은닉의 반대말은 전시죠. 진열하는 거죠. 쇼윈도show window에다가. 은닉이란 감추는 겁니다. 자 옷을 파는 양품점 같은 경우에는 마네킹에다가 옷을 입혀서 거리 쪽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보도록 환하게 보이게 하죠. 조명도 밝게 하고. 그런데 은행에 있는 비밀금고 같은 것은 바깥에 막 내놓지 않죠. 특히 VIP같은 고객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카드 찍고 비밀번호 해서, 그런데 안 들어가 봤습니다만 영화에 보면 나오데요. 거기에 다이아몬드 알맹이들이 수북이 들어있고 목걸이도 들어있고 유언장, 부동산등기등본 이런 것들이 들어있겠죠.

 

은닉되어 있다는 말은 하찮다는 거예요? 이게 귀하디귀하다는 겁니까? 귀하디귀한 거예요. 그럼 하나님께서 복음을 가지고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비밀이라고 했다고요. 은닉이라고 했다고요.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부터 해서 비유가 여러 개 나오는데, 거기에서 복음을 가지고 보물이라고 본 거예요. 마치 땅 속에 있는 보물, 또는 가루 서말 안에 들어있는 그 무엇. 가루 서말 안에 들어있는, 반죽 안에 들어있는 그 무엇. 손가락으로 후비면 발견될 수 없는데 반죽 자체를 부풀게 하는 자체적인 에너지 같은 그런 것. 꼭 집어서 이게 복음입니다, 라고 할 수 없는데 그 효과는 계속해서 살아있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말씀이라고 했는데, 물론 그 말씀을 뿌리면 씨앗이 보이잖아요. 보이지만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날 쯤 되면 그 씨앗은 어디에 갔어요? 없어요. 씨앗 자체가 없어요. 다른 것을 키우게 하는 영향력으로 행사하죠. 그래서 은닉이라는 것이 노출되지 않아요. 계속해서 은닉되면서 은닉된 힘이 무엇과 맞닥트려서 싸움을 하느냐 하면은 전시된 것과 진열된 것과 싸워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광야에서 예수님이 악마와 만났을 때의 싸움입니다. 악마는 사람들이 다 선호한 것들을 이미 뒷배로 갖고 있어요. 왜냐하면 높은 데에 가서 세상만국을 다 보게 했어요. 세상만국의 모든 영광을. 그러면 세상만국의 영광을 다 보게 했다는 말은 이미 평소에 악마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것을 그대로 예수님한테 유혹거리로서 제시한 거예요. 사람이라면 다 보고 있는 것. 여기가 5층이잖아요. 그러면 여기 창문이나 복도 창문에서 보면 다 보이잖아요. 다 보이죠. 대치동이 다 보인다 이 말이죠.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는 것. 이게 은닉된 것이 아니고 진열되어 있고 전시되어 있고 깔려 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딱 제시했을 때 거기에 대한 반격으로 예수님께서 제시한 것은 전시였습니까? 은닉이었습니까? 은닉적인 것을 내놓은 거예요. 숨겨진 것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 숨겨진 것이 뭐냐 하면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보인다, 안 보인다는 제가 집어넣었지만. 마지막에 세상영광이라는 그것을 보여주면서 이야기할 때, 결국은 마지막 끄집어낸 악마의 카드는 보이는 거예요. 은닉된 것이 아니고 보이는 거라고요.

 

그렇다면 악마가 예수님한테 유혹한 것은 뭐냐 하면은 당신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위상을 보이는 쪽으로, 더 이상 은닉에 머물지 말고 보이는 쪽으로 전개시키라고 꼬신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라고 한 거예요. 뛰어내리면 그게 사람들한테 눈에 보이겠죠. 성전이 높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고, 뛰어내리면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그런데 뛰어내렸는데 갑자기 안 보이는 천사가 와서 발을 받쳐준다면 이것은 모든 것이 안 보이는 은닉이, 더 이상 은닉의 시대가 끝나고 보이는 무대 안으로, 전부 다 보이는 식으로 마감이 돼버리죠. 은닉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죠. 그러면 은닉이 보이는 세상으로 올 때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악마가 원하는 힘의 논리구조에 들어오는 것이 됩니다. 힘으로.

 

자, 어디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면, “제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돈 좀 가졌냐?” 이래 이야기해요. 목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저쪽 교인이 “교회하는데 우리한테 얼마 보태줄 거예요? 혹시 돈 없어서 우리한테 기대는 것이 아닙니까?” 이래 나왔다 이 말이죠. “한 5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러면 교회에 아무 사단이 나지 않아요. “부담 드리지 않겠습니다. 한 5억이면 되겠습니까? 운영비하고 교회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아무문제가 없는데, 은닉적인 복음만 달랑 들고 왔을 때, “비겁한 목사! 어데 돈 꽤나 있어 보이는 우리한테 어디 부담주려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거는 뭐냐, 은닉 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의 싸움이죠. 이게 뭐냐 영적싸움이죠. 이게 영적싸움입니다. 이것이 어떤 목사뿐만이 아니고 교인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싸움이 이 싸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싸움이에요. “나이 40가까이 됐는데 너 일 안하고 뭐해? 실적을 내봐. 실적을. 눈에 보이는 현찰을 가져와봐. 사람대우해줄게. 돈도 못 벌고 빌빌거리는 주제에 너 왜 사냐?” 이런 요구를 했을 때, 그거는 그 이야기 자체가 뭐냐 하면은 내가 평소에 이런 인생관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고만 툭하고 털어낸 거예요. 그런 것을 요구하는 쪽이. “나 평소에 이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라는 것을 아주 본의 아니게 거기에다 다 노출시킨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 “공부 좀 해라. 복음을 위해서.” 공부 좀 해라! 복음을 위해서? 여러분 공부 좀 해라와 복음을 위해서가 이게 매치가 됩니까? 저 같으면 제 자식한테 이렇게 하겠습니다. “네가 마음을 낮춰서 공부 좀 해라. 놀 생각하지 말고. 건방떨지 말고. 너의 할 일은 공부를 해서 네가 얼마나 무식한가, 네가 이 땅에서 남한테 봉사할 수 있는 자질이 못 된다는 것을 누누이 네가 깨달아라. 공부를 함으로써 네가 이쯤으로는 남한테 돈벌이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시건방진 것인지 알고 겸손해라. 왜? 복음은 마음을 낮추는 것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이거는 둘러치나 앞으로 치나 결국은 공부 잘해야 너는 내 자식 값을 하는 것이고 내가 기분이 좋겠다는 그 본색을 그냥 어떻게 미화하든지 관계없이 그렇게 되죠.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연결되어야 됩니다. 우리가 만약에 보이지 않는 것과 끊어져버리면 마태복음 7장 마지막에 있는 말씀처럼 모래위에 지은 집입니다. 자기가 모래인지, 반석인지, 관심조차 갖겠다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이 바로 은닉과 연결된 소통이 되는 사람이에요. “내가 모래일까? 반석일까?”

 

“마지막 최후의 심판 날에 모래위에 지은 집은 무너진다.”라는 그 말씀이 이게 농담이 아니고, 빈말이 아니고, 진지하게 늘 떠오르면서 살아간다는 것,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떠벌리는 그런 가시적인 자랑질 말고, 주님이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있는 것, 그게 바로 복음 안에 있는,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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