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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00:05:32 조회 : 337         
유튜브강의 (274강, 275강) 유혹 , 성도의 즐거움 190416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274강            음성            동영상


275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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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0.138) 19-04-17 23:48 
274강-YouTube강의(유혹)20190416-이 근호 목사

 

제 274강, 제목은 ‘유혹’입니다. 자, 성경에서 나타나는 개념 중의 하나가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는 그 대목입니다. 자주 듣는 이야기죠. “성경에는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통하는 그 내용이 성경에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성경 말씀을 인정하는 자는,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 세상에는 영생이 없다는 이야기네요. 영생이 없죠. 이 세상에 영생이 있다면 영생의 길이 필요치 않으니까. 그러면 영생이 없다면 우리가 되게 아쉬워하는 것이 정상이죠. “아휴, 나 영생이 없어. 나 너무 아쉬워.” 근데 이 세상은 영생이 없다고 그렇게 아쉬워합니까? 생명이 없어서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죠.

 

이미 사람들의 인식가운데서 생명이라는 것, 영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벌써 잊어버린 겁니다. 관심이 없어요. 그것은 이 세상 자체가 이미 미혹된 상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가 중요한지 조차도 몰라요. 마음 자체가 미혹되었기 때문에, 미혹된 사람들에게 이게 좋습니다, 이거는 훌륭합니다, 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봤자 그 말을 듣고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벌써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에 이르는 길은 사실은 차단되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천국이 있습니다. “아, 그 천국에 가면 좋지요.”라고 하는 그 생각조차도 이미 마귀로부터 미혹된 상태의 마음이거든요. 뭐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하면 ‘아, 그거 믿고 믿음을 가지면 좋겠다.’라는 생각조차도 그 마음이 중립이 아니고. “중립이 있는데 잘못 선택하면 나는 지옥의 나락에 떨어지고 옳은 선택하면 천당 간다.” 이게 아니에요. 벌써 미혹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에 가장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자체가 마귀로부터 이미 유혹당하고 미혹 당했다는 그러한 면면을 보이는 정도에, 보이는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조차도 옳은 선택이 아니고 이미 잘못된 결과에 의해서 뱉어 나오는 우리의 선택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성경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나오는 내용들은 근원적으로 우리 마음 자체를 뒤집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이 내용자체가. 쉬운 예로 십계명을 여러분이 아시잖아요?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쭉 나오죠. 그 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편하게 생각해서, ‘그래. 주의 뜻이 살인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살인 안 해야지.’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마치 지금까지 살인을 안 한 것처럼. 살인 안 하기만 하면 계속 살인을 안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계속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아예, 애초부터 도적질 할 생각이 없었다고, 도적질 안 할 수 있는 그런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자꾸 오해하는 거예요. 로마서 3장에 나오죠. 우리가 율법을 주께서 주신 것은 그 율법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이미 꾸준히 해오고 있는 그런 상태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게 되어 있고, 하라 하면 안 하게 되어 있는 마음으로 이미 미혹된 마음, 악마의 길들여진 마음을 장착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그러한 상태를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요. 뭐냐 하면은 니가 미혹되게 되면 너는 생명을 잃는다고 이래 되어 있어요. 특히 잠언서에 나오는 것은 이게 이스라엘보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하나님의 언약백성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잠언서 7장에 나오는 그 대목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어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소년, 총각을 꼬시는 대목입니다. 남편은 멀리 출장을 갔는지, 19절에 보면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절,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절,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유혹이죠. 22절, “소년이 곧 그(여자)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23절,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

 

여기 생명을 잃어버린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여기에 등장하는 유부녀, 그 여자는 이 대목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은 이스라엘 소년을,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이스라엘 소년의 생명을 잃게 하는 역할로서 여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이 경고, 이러한 단호한 경고에 대해서 이 소년이 대처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힘, 그러한 능력이 과연 소년한테 있느냐, 하는 거예요.

 

소년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이 여인을 따라가지 않았을 거예요. 결과를 안다고 해서 자기 결정을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과라는 것은 당해봐야 실감나는 것이거든요. 지금 이 잠언서 7장의 대목은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은 선악과 심어놓고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을 하는 그 상황과 똑같아요. 왜냐하면 니가 따먹은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는데, 그 죽음이라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생판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추를 먹을 때 당부를 하죠. 이거는 청양고추이기 때문에 대단히 맵다. 다른 말로 매우 맵다. 코가 아플 정도로, 눈이 시릴 정도로 아플 것이라고 아무리 미사여구를 써서 경고, 경고를 날리고, 아무리 고추 먹지 말라고 하는 그 말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먹어라! 먹어라! 를 더욱 강조하는 말이 되는 거예요.

 

사람이 생명을 잃어봐야 생명이 귀한 줄을 알거든요. 그 작전이 하나님의 작전이에요. 그 작전에 손수 앞장서서 그 길을 가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이잖아요. 예수님. 율법에 따라서 이거 위반하면 저주받는다, 죽는다, 심판받는다고 했거든요. 아시면서 그 저주와 심판과 지옥의 자리에 주께서 먼저 손수가시고 우리보고 뒤따라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겁니다.

 

뭐를 부인하느냐?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자기 판단과 이성과 자기가 예상한대로 될 것이라고 자부했던 각오, 뭐 이런 것들을 부인하고 내 뒤를 따라오너라.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은 유혹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그 유혹 속에 빠져 죽자! 그러면 비로소 니가 가는 그 길이 멸망의 길인 동시에 생명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체험케 하십니다. 말씀을 가지고.
 이미아(IP:122.♡.170.138) 19-04-17 23:49 
275강-YouTube강의(성도의 즐거움)20190416-이 근호 목사

 

제 275강, 제목은 ‘성도의 즐거움’입니다. 이 세상은 지옥의 전조입니다. 지옥의 전조. 지옥의 전조이기도 하고 또 천국의 전조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일찍 시작한 지옥이기도 하고 일찍 시작한 천국이기도 해요. 두 가지의 요소가 다 들어있어요.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출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쭉정이도 있고 알곡도 있고.

 

이 세상은 하나로 통합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심어놓고 키우시고. 알곡은 알곡대로 심어놓고 키우시고. 이것을 전조라고 해요. 배치되는 성질의 것이 양쪽 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살면서 양쪽 다 있는 이 세상이 계속 연속되고, 지속되고, 이어지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에요.

 

아파트 위층의 소음이 심하다면, 층간소음 있고 위에서 담배 피워서 냄새가 내려오는데, “담배연기가 너무 좋아!” 담배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는 모르지만.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담배냄새가 너무 좋아! 나 시끄러운 것, 떠들고 부수고 하는 것 너무 좋아!” 이럴 것 같으면 같이 사세요. 그러나 뭔가 그게 싫다면, ‘돈만 좀 더 있으면 다른 데로 이사 갈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정상이겠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지옥 갈 사람도 있고 천국 갈 사람도 있는데, 지옥 갈 사람과 함께 산다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고 언젠가 이것은 해체되어야 하고 언젠가는 따로따로 갈 길을 떼 내어야 된다는 것을 늘 염두 해두어야 하는 이것이 신앙인으로서는 정상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은 “웃는 자는 실망할 것이다. 차라리 우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했어요. 누가복음 6장 21절 보면.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웃는 자는 너희 상은 다 받았다. 너희 상은 없다. 그러나 우는 자는 복을 받아서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마태복음 5장에서는 그걸 약간 구체적으로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이렇게 했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이렇게 구체적으로 복에 대해서 이야기했거든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자체가 사실은 앞뒤가 어울리지 않죠. 복이 있는데 앞에 어떤 요소가 있느냐 하면은 주리고 목마르다 이 말이죠. 고통스러운 거예요. 이 땅에 하나님의 의가 없어서 고통스러워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래 되어 있다고요.

 

애통하는 자, 보세요. 애통이 뭡니까? 뭐 좋아서 낄낄거리는 것이 애통이 아니잖아요. 반대 아닙니까? 가슴을 치는 것이 애통이 아닙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래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떠나려면 이 세상이 지긋지긋하고 이 세상에서 실망이 커야 돼요. 이 세상에 대해서.

 

그러면 이 세상에는 국가도 있을 것이고 민족도 있고 같은 이웃동네도 있을 것이지만, 특히 세상에는 누가 있어요? 자기 가족도 있고. 또 자기 가족에 누가 있어요? 내가 있잖아요. 집에 강아지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러면 누가 누구한테 실망을 해야 돼요? 아주 근본적으로. 내가 나한테 실망을 해줘야 해요. 이게 바로 성도의 즐거움입니다. 아까 제목이 성도의 즐거움이거든요.

 

자기한테 실망한 자가 즐겁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반대로 자기한테 자꾸 실망하지 않고 기대를 갖고 있다면, 그 기대가 좌절될 때는 그 대책을 어떻게 세울 건데요? 제가 지금 대책은 제공했어요. 자기한테 실망하라. 자기 자신한테 실망하라. 자기 자신한테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이죠.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니가 보기에 아주 병신이 되어라. 아주 바보병신이 되어라. 또 다른 말로 하면 니가 무정한, 아주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간주하라. 나는 희로애락도 없어. 그럴 자격도 없어. 목석같아. 목석같이, 때려도 아픈 줄도 모르고 좋아도 웃을 줄 모르는 목석같이 생각하라.

 

하지만 이게 자기한테 잔뜩 희망을 걸고 기대를 거는 것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목석같았는데 갑자기 공돈이 한 15억이 생겼다. 막 웃고 싶어서 난리죠. 하지만 참아야 돼. 성경말씀의 온갖 공식은 다 동원했는데 기분 좋은 마음을 어쩌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15억, 1억5천이 홀라당 날아갔다. “아니야, 난 기계야.”라고 혼자 백날 해봤자 기분 나빠서, 화가 나서 잠 못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요?

 

이거는 어떤 공식의 문제가 아니고, 성경말씀이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우리 마음을 제대로 간수할 수가 없어요. 좋으면 좋다고 할 수밖에 없고, 속으로 아무리 억누르고, press프레스(압박)해도 기쁨은 기쁘고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거예요. 좋고 나쁨이 우리 이성적으로 조절될 수가 없습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 “왜?”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어요?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쁜 거죠. 이유를 대는 것이 더 머리 아프고 골치 아파요. 논리를 끄집어내는 게. 딱 보니 기분 나쁜데. 또 어떤 사람은 딱 보면 기분 좋은 사람이 있어요. “왜 당신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좋다는데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어요.

 

자, 여기서 우리가 성경말씀을 한번 적용시켜봅시다. 왜 내 마음이 내가 기대한대로 안 되느냐, 어떤 때는 실망하고 어떤 때는 좋아라고 왜 그러느냐, 데살로니가전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6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이 대목이 아주 유명한 대목인데, 이 대목을 외우려면 5.16을 생각하면 돼요. 5.16군사쿠데타.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5.18광주사태. 19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절, “예언을 소멸치 말며” 21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기 5.18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되어 있죠. 범사에 감사하라나, 항상 기뻐하라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나, 이 세 가지 그 다음에 보면 어디 안에서? 예수 안에서 또는 성령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라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들 입장에서는 제 3자가 돼요. 나 말고 내 바깥에 계신 분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원리와 논리는 혼자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예상한대로 되면 기뻐하고 감사해요. 기도하는 것도. 기도응답 돼보세요. 기분 좋죠. “아, 내가 신자가 맞구나. 앞으로 기도빨로 나가면 안 되는 일이 없겠다.” 갑자기 희망이 막 생기죠. 그거는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기 안에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나라는 작품은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키우는 화초가 아니에요. 물주시고 비료를 주시는 분은 따로 있다고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예수님이 계시기에 예수님과 대화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교제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범사에 벌어진 상황이기에, 모든 상황이, 모든 범사가 주님에 의해서 제공되기 때문에 그 점에 의해서 우리는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생생하게 살아계시기 때문에.

 

결국 여기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그 분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그 관계가 있잖아요. 관계. 그 관계에 우리가 말려들었다. 또는 그 관계를 실제로 드러내기 위해서, 실제로 이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거기에 동원되었다, 라고 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하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가 나옵니다.

 

처음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우리는 단독으로 시작해가지고 깨져야 돼요. 왜 나는 안 되지, 라고 처음에는 짜증부터 시작하다가, 성령께서 그 일 조차도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그러한 교제와 그리고 주고받음을 통해서 감사하라고 기뻐하라고 주 앞에 늘 의지하고 모든 걸 맡기고 기도하라고 이런 일을 주셨구나, 라고 깨닫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성도의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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