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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23:44:40 조회 : 216         
유튜브강의 (280강, 281강) 공로의 위험성, 아첨과 탐심 190702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280강           음성          동영상


281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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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림(IP:61.♡.247.43) 19-07-03 19:54 
280강-YouTube강의(공로의 위험성)20190702-이 근호 목사


제280강, 제목은 ‘공로의 위험성’. 남이 애쓴 것은 내 공로가 안 되죠. 공로가 되려면 내가 애쓴 게 되요. 내가 애써서 결과가 나올 때 그걸 공로라고 하죠. 남 앞에 보일 수 있는 공과, 공로. 이 말은 내가 아무것도 안하면 공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결과가 생긴다면 그 결과와 나와 어떤 연결이 되겠느냐. 라는 그 점에 대해서 사람들이 굉장히 당황하고 낯설어 합니다.

내가 안했는데 결과가 주어졌다면, “이거 제가 안했는데요.” 이렇게 나오겠죠. “이거 제가 안 한건데 왜 저한테 이런 게 옵니까?” 라고 이야기 될 거란 말이죠. 그럴 때는 무엇을 본인이 스스로 부정하느냐면 자기 공로를 스스로 부정하는 게 되겠습니다. 그럼 자기 공로를 부정하게 되면 내가 행하지도 않는데 무엇을 받았을 때에, 그 사람이 자랑한다면 무엇이 자랑에서 빠지냐 하면 ‘내가 행해서 이걸 얻었다’ 하는 것은 쏙 다 빠지겠죠. 내가 행해서 얻은 거는 다 빠질거다. 그렇다면 내가 행하지도 않았는데 얻었다면 이 공과, 공로는 외부에서 주어진 겁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그냥 하늘에서 뭔가를 주는 것 자체로서의 복음이 아니라 무엇과 연관을 시키냐 하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와 결부시킵니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될 때 복음이 되는 겁니다. 그럼 복음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이 세상에 여러 직장, 직업들이 있지만 누가 적절하냐 하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저 인간은 저주받아 마땅하다’하는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아주 적절하죠.

세리가 그렇고 창기가 그렇고 강도가 그렇고 또 죄인들이 그렇고. 그리고 죄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질병을 가진 사람, 또는 귀신 들려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주께서 건져냄으로써 비교되는 거예요. 뭔가 하자가 있는 사람을 건지는 것하고-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하고, 소위 본인 스스로 나는 괜찮은 존재, 나는 스스로 나 혼자 있어도 우수한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을 주께서 찾아갔을 때 거기에 나타나는 반응들을 한번 비교해보자 이 말입니다. 어느 쪽이 복음의 반응이겠습니까?

포도원 비유에 아침에 일찍 온 사람과 제일 나중에 온 사람. 품삯을 나눠줄 때 그 반응이 같지가 않았다, 달라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장에서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이야기하시냐 하면,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에게 천국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어떤 현상이 계속 일어나느냐 하면, 먼저 된 자가 나중되는 현상이 되풀이되서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의 심보라 하는 것은 나중된 자, 꼴찌를 싫어해요. 유명세 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줄 세운다고 이야기하죠. 줄 세웠을 때 성적이 상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쳐지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이 안 돼요. 그런데 주님께서 뒤쪽부분을 만약에 잘라서 구원한다면 앞쪽은 인생 뭐 살았습니까? 헛산 게 되지요, 인생이. 넓은 길,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유명한 것이 하나님께 복받은 결과라고 보는 겁니다. 복을 받게 되면 유명하게 되고 복을 안 받게 되면 뭐 판도 별로 안 팔리고 인기도 없고 그렇게 되겠지요. 사람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 어디에 적절하겠어요? 내가 살라고 애쓰고 애써도 아무리 애써도 내 공과는 이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겠죠.

목회도 마찬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교인3명. 그냥 멋있는 인물 들고 큰 교회에서 우아하고 품위있고 품격있게 점잖게 강단에 서기만 했는데, 잘난 얼굴로 멋있는 허우대로 서기만 했는데 한 주에 등록교인 500명. 이거는 아무리 애를 쓰고 설교 준비 많이 해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왜 유명한 것을 부러워하느냐면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 그것 과연 주님이 같이 좋아할까요?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궁극적인 시험거리라고 할까요? 유혹거리가 뭐냐하면 이 세상에서 유명하지 말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만 유명하겠지요, 사람들이 알아주겠죠. 문제는 주님이 안 알아준다는 겁니다. 주님이 알아주지를 않아요. 왜냐면 주님이 꼴찌기 때문에. 주님이 퇴학당했잖아요, 이 세상에서. 버림받았잖아요.

그것은 주님 가시는 길과 이 세상이 추구하는 그 길이 방향이 반대가 돼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 가면서 지금 천국 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무지 헷갈려요. 교회 오는 것 보니까 천국 가겠다는 마음 같은데 막상 교회에서 기도하고 추구하는 것 보면 이건 지옥 못가서 환장해요.

그래서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 혼자 유명한 말이지만, 친구따라 지옥간다. 친척따라 교회가서 지옥간다. 보통 친구따라 강남간다 하잖아요. 아는 사람 전도해서 같이 지옥간다. 둘 다 하나님 뜻 입고 세상에서 유명세 떨려는 그 욕구와 욕망을 안 버리고 그것을 오히려 교회에서 장려하고 키우려고 하는 겁니다.

감사헌금 제목들이 뭐에요? ‘망해서 감사합니다’ 그런 것 특이한 사람도 있긴 있겠지만, 대부분의 감사헌금은 그렇지 않죠. 아이고 참 죽을 뻔했다, 큰일날 뻔했다. 이래서 죽을 뻔한걸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이러잖아요. 주님 가신 길과 반대 길로 가면서 도리어 감사하대.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이거 이상한 거 아닙니까? 이게 이상한 짓이 아니고 너도나도 다 그러니까 그게 정답인 줄 알고 있어요. 좀 망했다 하면 부끄러워서 교회 낯짝 들고 나오질 않아요. 좀 됐다 싶으면 낯짝 들고 나온다고요. 자랑거리 어디 경쟁하려고 교회 하는 겁니까.

공로가 왜 이렇게 위험하냐. 그건 일상 속에 인간들이 갇혀서 순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예수님에게 “점심 같이 합시다” 해가지고 “오케이” 했다 이 말이죠. 들어가는데 잡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손을 안 씻었어요. 그러니까 38절,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손을 왜 안씻냐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하죠. 39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갇혀있는 내부가 탐욕과 악독이 계속해서 순환하면서 바깥에는 깨끗함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이 뭐냐 하면 어려운 말씀인데 바깥이 깨끗하게 나왔다는 말은 속에 뭐가 순환한다? 탐욕과 악독이 순환하는 그 결과물로 바깥에 ‘나 깨끗하죠’ 하는 결과물로 등장하는 거예요. 이중적이죠. 차라리 속을 보여야 될 텐데.

남들이 기대하는 공과에, 공로에 신경을 쓰는 거예요. 남이 나를 인정해줄 때 그걸로 나는  내 자신의 본질로 여기겠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겉을 보여 달라고 오신 게 아니고 “기다려라. 내가 니 속까지 쳐들어갈게. 니가 얼마나 악독과 탐욕인지”.

따라서 성도라면 자기의 악독과 탐욕이 가득한 것을 주님 앞에 들킨 것을 도리어 감사해야겠죠. 그러면 천국 가는 데에 자기의 공로가 절대로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이하림(IP:61.♡.247.43) 19-07-03 19:54 
281강-YouTube강의(아첨과 탐심)20190702-이 근호 목사


제281강, 제목은 ‘아첨과 탐심’. 아첨과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 단어 자체가 참 듣기 싫어하는 단어죠. “당신은 아첨꾼이야”, “당신은 욕심이 많아” 이러면 욕으로 간주되는 겁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면서 좋은 말, 고운 말만 곱게 하고 남한테 기분 나쁘지 않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유념하면서 복음 전할 거라고 생각하시면 그건 오산입니다.

사도에게 있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꼬시기 위함이 아니고 달래기 위함이 아니고 기준을 들이미는 이야기에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주저하지 않고 여지없이, 안면 같은 것 계산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복음, 심판 이런 게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기 때문에. 자기가 책임질 필요는 없잖아요.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절대기준대로 외치는데 그걸 뭘 주저하겠어요? 선지자가 따로 자기의 종교단체를 형성한다든지 공동체 운동해서 그걸 자기 밥벌이로 여긴다면 사람 하나하나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상처 안주려고 달래려고 애쓰겠죠. 그런데 구약에서 선지자들 보세요. 그 사람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주께서 시켜서 하는 거예요. 성신이 임했잖아요.

에스겔 같은 경우에 주님께서 에스겔한테 분명히 언단을 내렸습니다. 네가 내 시키는대로 안하면 그 책임을 너한테 묻겠다는 거예요. 시키는대로 하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일이라고 아예 미리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환영받는, 대우받고 대접받는 재미로 주의 사람, 주의 일 그런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성립이 안되는 겁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뭘 하나 해놓고 새삼 남들이 나를 얼마나 더 좋게 보느냐를 계산에 넣지 마세요.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는 것, 또 좋게 보는 것 거기에 휘둘리면 안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2장 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복음을 전파했다.

왜 그렇게 사도가 잘해줬느냐. 8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데살로니가 2장 8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복음을 전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냐 아니냐의 여부를 사도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다른 것 말고, 돈 뭐 대주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이것 말고, 복음 전하는 걸 말해요.

오늘 아침 뉴스에 그런 게 나왔거든요.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애를 놓고 난 뒤에 애를 못  키워가지고 어디 갖다 버릴 데 찾는 사람들이요. 우리 교회에 베이비박스 하나 만들어 놓고, 애 맡기면 출생 시간과 날짜만 안다면 우리가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해서 십 몇 년 전부터 유명했던 목사 부부가 있어요. 많은 후원금도 받고. 그런데 그 사람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초수급을 횡령한 거예요. 1억5천인가 2억인가를. 원래 수입이 없는 사람이어야 되는데 목사되는 사람은 한 달 정기적 수입이 400만원, 그 부인된 사람은 290만원, 토탈 690에다가 액수를 알 수도 없는 막대한 후원금, 거기다가 1억 5천까지 횡령.

자, 그 사람의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미혼모 받아주는 것이 복음일까요? 그건 복지사가 해야 될 일 아닙니까? 미혼모 왔는데 사도가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 ‘미혼모야, 아이 가져 오너라. 교회에 맡기면 된다.’ 그게 복음이에요?

기쁜 소식은 다른 게 아니에요. “복음만 있다면 저 죽어도 좋아요.”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그 외에는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가지는 게 아니라 복음이 나를 가진 것. 그걸로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그런 복음을 사랑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주변에 보게 되면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그런데 복음 아는 사람은 그리 많은데 “복음 외에 다른 건 다 싫어요.” 그런 사람은 찾기가 참 드물어요. 오히려 그런 사람 등장하면 ‘웬 기적인가’ 하고 느껴집니다. “복음 외에는 나는 살맛이 없습니다.”하는 그런 사람 말이죠.

복음 안다 하면서도 말씀 듣고 이런 것은 강제로 밀어내. 나 복음 아니까 이야기하지마라는 식으로. 도대체 정신머리가 어디 팔렸는지 몰라, 정신머리가. 그러니까 복음 알아서 자기 천당 가겠다는 거예요. 이거는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복음을 이용하는 것뿐이 안 돼요.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는 그게 아니에요,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목숨 바친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이거에요.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사람만이 지금 내 말을 납득하고 이해한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복음을 알아? 그러면 너희들 목숨을 더 이상 너의 생존에다가 걸지 말라.” 지금 그런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가 복음 팔아가지고 밥 먹고 살았습니까? 아니잖아요. 복음 따로, 자기 목숨 부지 따로. 따로국밥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따로국밥도 아니고 말이죠. 이게 2장 6절에 보게 되면,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이 복음을 찾는다는 말은 뭐를 포기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느냐면, 복음을 모를 때에 내가 고대했던 그 세상의 유명세, 세상 영광 그런 것들은 이제 전부 다 하찮은 것이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그거 나 관심 없다.

만약에 어떤 유명한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복음을 알았다 칩시다. 그럼 공을 던질 때 어떻게 던집니까? 영광 받기 위해서 던지는 게 아니고 죽어라고 던지는 거예요. 시속 155km, 죽어라고. 이거 던져서 내가 유명해지고 올스타전 나가고 이게 아니라 죽어라고 던지고 공을 찰 때 나를 죽어라고 공을 찰 거예요. 임대하는데 1000억 받기 위해서, 1000만 유로 받기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이것도 내 죽는 하나의 방편이다’ 생각하고 사는 거예요.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은 나를 살리는 직업이 아니고 내 목숨을 하찮게 여기기 위해서 나한테 허락된 나의 삶의 공간이라 여기는 겁니다. 왜? 이미 영생을 받았기 때문에. 영생보다 더 귀한 직업은 없거든요.

그게 아닌 모든 것을, 성경은 아첨과 탐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이처럼 아첨과 탐심을 겸해서 이야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5절에,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증거하는 거예요. 주께서 아신다는 거예요, 복음 전할 때. 남한테 인기 얻기 위해서 복음 전하는 게 아니라 이 말입니다.

이 말은 사도가 “나 목숨 걸고 복음 전하니까 복음 받는 사람도 네 목숨 걸고, 버리고 네 목숨 자리에다가 복음을 얹어라.”이런 뜻이에요.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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