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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23:50:57 조회 : 66         
유튜브강의 (312강, 313강), 자신을 향한 노고 , 함께 있는 악마 200519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312강                 음성                 동영상


313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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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림(IP:223.♡.58.204) 20-05-20 09:30 
312강-YouTube강의(자기를 위한 노고 사무엘상 15:25)20200519-이 근호 목사


제312강, 제목은 ‘자신을 향한 노고’. 자신을 향한 노력. 나라는 것을 알려면 본인이 거울을 봐서는 모르고요. 누가, 타인이 나한테 다가와야 돼요. 다가오고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는 이렇다’하는 것과 그 사람과의 만남, 부딪침과 또는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아는 것하고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 혼자 있을 때는 누구나 인간은 자기가 점잔뺄 수 있어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그리고 겸손할 자신감도 생기고 그 누굴 만나도 내가 예의바르게 할,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처럼 자기를 미화, 아름답게 꾸밀 수가 있어요.

그런데 남이 딱 오게 되면, 혼자 거울 보면서 했던 자기 자신의 구상은 남이 없을 때 혼자 상상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날마다 자기를 조작합니다. operation. 만들어내요.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면 이쁘게 만들어요. 아름답게 만들어내요, 자기 혼자 있을 때는.

그래서 사람들은 이쁜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성질 돋우는 남이 오게 되면 피하든지 도망치든지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또 외롭잖아요. 여기에 개 들어갑니다. 고양이 들어가죠. 개, 고양이 키우는 이유가 근사한 나를 누가 위로해줘요? 누가 맞장구를 쳐줍니까? 고분고분한 개, 고양이가 나의 근사함을 마치 호응해주는 것처럼 꼬리 흔들면서 말 잘 듣죠. “앉아!” 그러면 말 잘 듣는다고요. 내 말이 먹히는 거, 그만큼 나는 우수한 존재로 증명이 돼요. 내 말이 먹힌다는 거.

애를 하나 놓고, 애가 귀여웠다. 그런데 애가 크니까 또 뭐 지 맘대로 한다. 애 하나 더 놓을까. 오~또 귀엽네. 벌써 세월 지나서 애가 또 개구쟁이다. 또 하나 더 낳지, 뭐. 또 귀엽네. 역시 애는 놓을수록 귀여워. 그러다보니까 어떤 가정은 애 13명 놓는 가정이 있어요. 고 귀여운 맛에.

자, 귀엽다는 말이 뭐에요? 자식은 타인이 아니에요. 나를 성가시게 하지를 않습니다. 성가시게 하면 애 하나 더 놓으면 되니까. 내가 보는대로, 내 뜻대로, 내 원대로 조작이 가능하거든요. 내가 나를 조작한 그 operation, 조작된 기술을 쓰기에 만만한 게 누구냐면 갓난 아이고 어린 아기에요. 갓난아기 좀 귀찮고 밤에 잠 못 자게 만들지만 그래도 자식은 키우는 보람이 있다는 말이 뭔 뜻입니까? 내 근사함과 내 잘남을,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일 때 스스로 내가 확인받을 수 있는 거예요. 역시 나는 괜찮은 아버지야, 괜찮은 엄마야. 자식을 통해서 확인받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왕이 등장해요. 왕이라 하는 것은 그 나라에서 자기하고 동등하게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없다? 없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죠, 왕이니까. 왕이니까 최고가 되는 거죠. 최고니까 자기한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괜찮다, 훌륭하다, 근사하다 하면 그냥 그대로 훌륭하고 근사한 거예요.

제가 방금 사울왕 이야기했죠? 왕. 그 왕이 옛날에는 한 명이잖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이 왕이에요. 그래서 내 가정에서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왕질하는 거예요. 왕질이 다른 게 아니고, 남을 지배하고 명령하는 게 왕이 아니라 내가 근사한 것을 너희들이 맞장구쳐가지고 “옆에 뭐하나? 나 좀 확인해줘.” 내가 이정도로 괜찮다는 것을 식구들은 뭐하냐는 말이죠. 박수 쳐주고 나 호응해주고 “당신만이 최고야” 이렇게 해야 이게 가정에 살 맛 나는 거 아니겠어요? 이게 가정의 살 맛이다 이 말이죠. 왜? 나는 왕이니까.

왕은 뭐 남한테 대단하다가 아니라 나는 내 잘난 맛에 살고 싶어. 그거 좀, 그런 환경 좀 허락해줘. 너 좀 양보해가지고. 내가 허튼 짓하더라도 용납해주고 내가 싫더라도 고분고분 해가지고...나는 내가 보기에 괜찮아, 괜찮은 존재야. 네가 식구가 됐으면 괜찮은 존재에게 왜 박수 못 쳐주나. 그게 왕입니다.

그런데 천하에 무서울 것 없는 사울왕 옆에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누가 등장하느냐 하면 하나님과 통하는 분이 등장해요.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울은 천하 자기가 최고인데 여기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 이름은 사무엘. 사무엘이 와서 왕에게 뭐라고 하느냐면 22절부터,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라고 반박하죠.

뭐냐 하면 “사울왕 당신이 제사 드리면 제사 드릴 때 기분 좋았지? ‘나같이 왕이 되니까 제사 드린다. 와 이정도면 나는 멋있어.’ 라고 하고 싶죠?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안 받겠답니다, 이 왕이시여.” 라고 구박한 거예요. 이게 바로 뭐냐 하면 내게 속하지 않은 타인의 등장이에요, 남이.

그리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했는데 왕이기 때문에 왕의 본성상 누구한테 순종할 마음은 평소에 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최고에요. 비록 회사에서 내가 말단직원이라도 내가 최고에요. 말단직원이 열심히 한다 뭔 뜻입니까? 자신을 향하여 노고가 가득하다. 뭔 뜻입니까? 과장이라도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 나는 나한테 충실해서 나는 나한테 이정도야. 이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신은 당신이 최고가 되고 내가 좋냐 나쁘냐를 당신이 측정할 권한이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측정을 해도 누가 측정하냐? 따로 계신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느 정도 대단하냐 대단하지 않냐 스스로 거울보고 자아도취에 빠져서 함부로 평가내리지 마세요. 평가 내리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자, 그 소리 듣고 사울왕이 자기 본색을 드러냅니다. 제가 언급하고 싶은 본문은 사실 25절이에요.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하니까 26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다” 무슨 말이냐 하면 평소에 당신은 당신의 허술함, 당신의 못났음을 지적할 수 있는 타인을 당신 곁에 두기를 당신이 원했습니까, 안 원했습니까? 안 원했죠. 당신 곁에 두는 사람은 뭐냐 하면 이유도 없이 무조건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박수쳐주는 사람만 당신은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옆에 두고 그 사람을 내 편이다, 내 사람으로 간주한 거예요.

이거는 본인이 신이라는 뜻이에요. 신을 믿는 게 아니고 본인이 신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대표자가 누구다? 사울왕이었던 겁니다. 사무엘이 왜 있는 거예요? 주의 말씀이 왜 있는 겁니까? 예수님은 왜 계시고 하나님은 왜 계십니까? 세리와 창기가 너보다 먼저 천당 간다고 그거 지적하려고 우리 곁에 나타나신 거예요.

너 훌륭해서 내가 피 흘렸냐 이 말이죠. 네가 잘나서 내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 안다고 해놓고 잘난 맛에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곁에 다가오는 모든 타인은 다 자기들끼리 다 잘났어요. 괜히 우리 마음 안 상하려고 조작하고 양보해서 좋은 소리만 골라 하는 거예요.

끝으로 말씀드릴 것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람을 좋게 하면 그 사람은 상대하지 마세요. 그거 나 좋게 하는 거예요. 그건 주님이 보내신 사람 아닙니다.

진짜 주께서 보낸 사람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봐줘서, 참새 키우듯이, 들풀 키우듯이 봐줘서 이만큼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주님의 사랑 때문이지 내가 노력해서 이만큼 된 거 아님을 깨우쳐 주는 사람, 그게 진짜 주께서 보낸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곁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하림(IP:223.♡.58.204) 20-05-20 09:31 
313강-YouTube강의(함께 있는 악마 마태복음 4:1)20200519-이 근호 목사


제313강, 제목은 ‘함께 있는 악마’. 악마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하면 여러분 기분 나쁘겠죠? 그러니까 악마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악마와 함께 있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악마와 함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우리가 판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거 너무 성급하게 ‘지금 내 몸이 아프니까 악마가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마는 인간을 시시하게 봐요. 그거 뭐 갖고 놀 쨉도 안돼요.

어떤 사람에게 악마가 그 사람 속에 있다가 나갔어요. 나가놓고 그 다음에 일곱 귀신친구 와가지고 들어왔다는 이야기 있죠? 이거 뭐냐 하면 아무리 비밀번호 바꿔놓고 악마 들어오지 말라고 스마트키 백날해도, 스마트키 10개를 달아도 악마는 재미있다고 5749, 이건 1256 치고 다 들어와 버려요. 우리 마음 문 열고 다 들어와 버려요.

꿈에도 들어오고, 밥 먹을 때도 들어오고, 일 할 때, 운동할 때도 들어오고. 악마는 지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악마여 들어오지 마세요.’ 빌고 고사지낸다고 악마 안 들어오고 그런 거 없습니다. “악마야 우리 교회 들어오지 마.” 한다고 “아이고 무서워라.” 하면서 안 들어오고 그런 거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악마한테 전부다 노출되고 태어날 때부터 그렇기 때문에 악마의 침범이냐 아니냐를 자꾸 예리하게 나누게 되면 본인이 정신적으로 사는 게 피곤해져요. 박카스 먹어도 소용없습니다. 컨디션 10병 먹어도 소용없어요. 사는 게 피곤해요. “악마야 좀 떠나가라.”한다고 해서 악마가 “아이고 예,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하고 그런 악마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위로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있을 때 악마와 함께 있었다. 악마가 늘 예수님한테 시비 걸었다. 예수님조차도 악마가 와서 자꾸 집적댔는데 아니 우리가 뭐라고 “악마야, 이제 좀 편하게 살자. 네가 와서 괴롭다. 부탁하니까 뭐하면 나가겠느냐?” 이런 식으로 되지도 않는 억지를 쓰지 마세요.

반대로 악마와 함께 있음을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그냥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악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렇게 편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뭐가 필요하냐? 악마가 나가지도 않고. 지 맘대로 나가고 들어오고 한다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할 때 이것 하나만 하면 돼요. 어떤 것이 악마의 속삭임이고 어떤 것이 악마의 유혹인지 그것만 간파하면 되는 겁니다. 이건 성령이 오게 되면 간파가 되거든요.

이걸 간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먼저 시범조로, 성령께서 예수님을 다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있을 때는 예수님 홀로 있지 않고 성령께서 함께 일을 시켰거든요. 성령께서 어떤 실습을 시켰느냐 하면 악마와 함께 있을 때 악마는 비로소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정체를 감추지 않고 바보같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버려요, 악마가.

다른 인간들한테는 악마가 자기 정체를 숨겨서 “악마 없~다” 하는 것처럼, 악마가 없는 채로 살아가지만 예수님한테는 그럴 수 없어요. 악마가, 자기가 감추고 싶어도 자기의 정체를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마태복음 4장에 나옵니다. 성령께서 일부러 악마의 정체를 노출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광야에다가 파견 근무시킨 거죠.

이 광야가 뭐하는 광야냐 하면 이스라엘이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 원망, 원망, 불평, 불평이 늘어졌던 그 환경이 광야 환경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광야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무방해요. 왜냐하면 계속 불평, 불만이 나오니까. 불평, 불만 나오면 무조건 광야죠.

불평,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삶과 주께서 몰아넣는 삶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그 틈 사이에서 원망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광야에 있다고 보시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신 겁니다.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광야에 들렀다는 말은 예수님께는 제자가 몇 명이냐 하면 twelve죠, 12명. 그러니까 이 12명이라는 제자를 의도적으로 13명도 아니고 11명도 아니고 12명을 뽑은 이유는 이미 배려 놔버린 이스라엘 대신에 차이 나는 다른 이스라엘을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천국백성 새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강해요.

그러면 제자들보고 닦달내야 됩니까? “똑바로 해. 똑바로 하고 내 말 순종해.” 이렇게 닦달내야 되겠어요? 아니에요. 예수님부터 먼저, 왜 현재 이스라엘이 제대로 이스라엘답게 가동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못 보이는지 이유가 있거든요.

그 이유는 악마가 인간보다 더 세기 때문에 그래요. 아담의 죄가 우리의 선을 향한 의지보다 더 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지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죄가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행하게 한 거예요, 죄가. 그래서 제가 벌써 수백 번 이야기했습니다. 내 인생에 내가 책임지지 마라. 죄가 나한테 했기 때문에 그걸 반성한다 할지라도 죄가 그 일 또 할 수밖에 없어요. 반성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분명히 제가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쓸데없이 회개, 반성한답시고 책임질 생각하지 마세요. 책임 안 져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반대로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말라고. 얼마나 고집이 센지. 태클 안 걸면 그 인생 그래, 쓸만하겠다. 쓸모없어요.

자, 다시 이야기합니다. 악마는 들락거립니다. 우리 힘으로 오지 말라고, ‘악마, 환영하지 않습니다.’ 한다고 ‘나 외에, 관련자 외 출입금지’ 이런 거 소용없어요. 악마가 들락거리는데 악마가 어떤 일을 하느냐 간파하면 됩니다.

첫 번째는 뭐냐 하면 악마는 돌이 떡 되게 하라고 하죠. 이것을 예수님이 경험 안하고 우리만 경험했다면 우리가 예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잔소리가 돼요. “자기는 뭐,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자꾸 좋은 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친히 예수님께서 이걸 견뎠다 이 말이죠.

남자들 군에 가보면 알잖아요. 유격조교가 그 코스를 본인이 해봤겠어요, 안 해봤겠어요? 해봤죠. 해보니깐 군인들이 훈련할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다 해봤어요. 해보고 어떤 식으로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해봐! 이 세상을 악마와 더불어 한번 살아봐.” 해결책이 없으면 내가 하지 마라 하는데 해결책이 있는 입장에서라면 해보란 말이죠. “백신이 있다면 신종코로나 걸려 봐.” 이런 식이란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선 어떻게 하냐? 돈이 최고라는 것을 평생 실습케 하십니다. 야, 이 실습은요, 아무도 못 빠져 나가요. 역시 하나님보다 무엇보다 돈이 최고야. 예수보다도 돈이 최고야. 이걸 가슴에 와 닿게, 찐 찐 찐하게 그걸 느낀다 말이죠, 찐하게. 어떤 노래보면 돈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노래가 있는데 되지도 않는 거짓말입니다. 친구보다 돈이 우선입니다. 친구한테 사기당하지 마세요. 돈이 최고입니다.

그걸 확실하게 느껴야 돼요.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책임지라 했어요, 책임지지 말라고 했어요? 책임지지 마세요. 돈이 자동적인데 뭐, 자동코스에요. 뭐든 돈으로 해결 안되는 게 없고 돈이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고, 마지막 기쁨은 돈의 기쁨이에요. 돈만 챙긴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또 하나님께서 실습시키십니다. 인기. 인기 짱. 아, 내 팬들 많고 나를 옆에서 측은하게 보고 나에게 동조하고 나에게 관심 갖고 사랑을 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 이거 자살 안할 수 있어요. 그러나 누가 자살하느냐 하면 어디 먹을 게 없어서 자살하는 게 아니고 내가 마음 둘 곳 없는 거예요.

제가 부산강의에서 했나,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죽는다 했죠. 경비원 자살한 게 하소연할 데 없다고 자기 유서에 써놨잖아요.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자살해요. 집에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자살하는 게 아니고 도대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어떤 사람도 없다는 거. 따라서 친구, 정말 돈 없어도 친구 있으면 좋겠다고. 이거 혹독하게 체험해야 됩니다. 마귀와 함께 사는 체험을 해야 돼요.

세 번째가 뭐냐 하면 내 욕망, 그걸 소망이라 해요, 내 희망, 기대.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해서 희망 없으면 못 살아요. 뭔가 희망이 있어야 돼요. 내가 안 되면 자식이 잘되든지, 내가 안 되면 내 투자처가 잘 돌아가든지. 하여튼 사람은 뭔가 미래가 있어야 돼요, 미래가. 미래에 대한 희망, 조그마한 소망, 이런 게 있어야 돼요. 그것 때문에 주식하고 그것 때문에 뭐 하나, 로또 사는 거예요. 그게 나를 지금 숨 쉬게 만들어요. 돌아오는 토요일마다 뭐합니까? 로또 뽑죠? 그게 한주를 살게 하는 나의 에너지가 돼요. 희망이 있어야 돼요, 희망. 잘된다는.

애 성적이 내려갔다. 하지만 애가 하는 말이 “엄마 다음에는 잘 할게.” 그 희망이 있으면 때리기 싫어요. 왜? 잘한다는 희망을 주니까. 잘한다는 희망을 준다면 이 지옥같은 악마가 있어도 살만해요. 주님께서는 거기에 푹 젖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주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네가 책임지지 마. 내가 말씀으로 다 이루었어. 네 인생 불쌍히 봐서 내가 책임질게.” 하나님께서 악마와 함께 하시는 이유를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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