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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23:32:01 조회 : 99         
유튜브(476강/477강) 너와 나/ 시간과 공간의 지혜 240702 이름 : 이근호(IP:112.165.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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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림(IP:220.♡.221.142) 24-07-03 10:05 
476강-YouTube강의(너와 나 잠언 16:19)20240702-이 근호 목사


제476강, ‘너와 나’. 너와 나라는 것은 둘 사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너만 있는 게 아니고 나만 있는 게 아니고, 나에게 네가 있고 너에게 내가 있다. 우리가 서로 엮이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나는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네가 있어야 되고, 너는 ‘너’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네 속에 내가 있어야 된다. 보통 그럴 때 ‘나와 너’ 하잖아요.

그러면 나와 너 사이에 무엇을 거기다 집어넣어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너는 왜 나를 만나게 하고 나는 왜 너를 굳이 만나게 하고 알게 하시는가.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잠언서 16장 18절-19절 보면 이런 말씀 나와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이라든지 거만은 홀로 있는 게 아니고, 나와 너의 만남에서 무엇이 교만이며 무엇이 거만인가가 나타나요.

예를 들면, 모세가 바로 왕을 몰랐어요. 전에 자기가 알던 양부(양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자기가 애굽에서 떠나서 양을 쳤던 그때에 바로 왕이 바뀌어요. 그리고 모세가 새롭게 자기가 알지 못하는 바로 왕을 만납니다. 여기에 대해서 모세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나는 지금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대로 그냥 살겠습니다.

이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지금껏 자기가 열심히 살아온 그것이 아까워서라도 새삼스럽게 누굴 만나서 새로 사귄다는 것이 보통 부담되는 게 아니에요. 연세 많아서 아들 며느리 맞이할 때도, “그래, 네가 참 친정에서 잘 배웠구나.”하고 그다음 말은 ‘우리 같이 살자’가 아닙니다. “그래, 내 아들하고 나가서 잘 살아라.” 그러면 며느리가 “어머님, 제가 모실게요.” 하면 어머니는 뭐라고 합니까? “아이고, 무서운 소리하지 마라. 뭘 모셔. 나는 나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

다시 말해서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새로운 너를 만나기가 힘든 거예요. 그동안 살아온 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물론 아담의 죄이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요. 경제적인 아쉬움이 없다면. 경제적으로 후달리지 않는 조건 하에서는 혼자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나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하니까요. 남 구애받지 않으니까 이게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모세도 바로 왕 만나는 게 안 좋아요. 싫어요. 바로 왕도 마찬가지에요. 모세 만나는 것도 싫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바로를 만나게 합니다. 그것은 교만이 무엇이며 강퍅이 무엇이며 거만이 무엇인가는 누구를 만나는 가운데서 그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도 닦고 혼자 반듯하게 살면 교만과 거만, 그런 게 자기한테 있다는 걸 생각도 못하죠.

그러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 반발하면서 ‘그럼 저 혼자 살래요.’하고 계속 고집을 부리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잠언서 16장 19절에 보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겸손한 자와 함께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는 거예요. 혼자 살면 어느새 우리는 마음이 많이 교만해져있고 거만해져있습니다. 나를 지적하는 타인이 없으니까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편하게 생각되는 거죠. 그런데 잠언서 16장 19절에 보면, 겸손한 자와 함께 하라. 왜? 그래야 마음을 낮추니까.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신약적 해답은 딱 나왔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 배우는 거예요. 예수님이 모델이 되는 겁니다. 혼자 사는 내가 모델이 아니고 예수님이 모델이 되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이 모델이 된다는 조건이 뭐냐? ‘남하고는 만나지 말라’가 되죠.

이게 이제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인데, ‘남하고 만나지 말라’고 할 때 ‘그래. 나는 남하고 만나기 싫어. 혼자 사는 게 내 소원이었잖아요. 제가 전부터 이야기했잖아요, 하나님. 혼자 산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잠언서 18장 8절에 보면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인간이 혼자 산다고 해서 정말 혼자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씹는 가운데서 혼자 살죠. 남을 씹어보는 재미. 그렇지. 사는 맛이 이 맛이지. 씹는 맛이에요. 씹는 맛에 사는 거예요. 자기보다 못한 거, 자기보다 말썽꾸러기. 그게 인간 뱃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 뜻은 뭐냐? 잠언서 18장 9절에,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인간들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 주께서 하신 일이 있어요. 그 하신 일을 누구한테 배우는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자와 함께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배워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모세 이야기를 다시 하면, 모세는 애굽에 안 가려고 했어요. 그냥 혼자 살고 싶어 해요. 그러나 하나님이, 네 지팡이와 같이 가라. 지팡이가 뭐냐 하면 하나님하고 같이 움직인다는 그러한 표식이 지팡이에요. 네 지팡이 못 버리잖아. 그처럼 지팡이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래서요? 내가 하고자 하는 기적을 이제는 기적을 베풀지 못하는 네가 그것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는 ‘모세가 저기 있네.’로 출발하겠지만 결국은 남들 보기에 ‘하나님이 저기 있네.’라는 일이 바로 네가 해야 될 일이다. 우리 자신이 해야 될 일이에요.

이제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예수님은 무척이나 겸손했어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데 굳이 사람이 될 필요가 없어요. 그것도 죄인이 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사람 되시고 일부러 죄인 되셨어요. 왜냐하면 우리 인간과 죄인과 더불어 함께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겸손입니다.

함께 안 해도 되는데 함께해주시고자 오신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 분의 취지를 생각해서 우리는 매사에 주님과 더불어 해야 돼요. 16장 19절에 “겸손한 자와 더불어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더불어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이 성경말씀 전체는 우리의 마음을 겨냥해서 주신 말씀이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까지 주님의 마음으로 섞어서 바꾸어버리는 그 작업이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 교만한 인간아. 그 더러운 마음, 나와 같이 하여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처럼 같이 겸손하게 되게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모세 옆에 지팡이가 있는 이유기도 한 겁니다.
 이하림(IP:220.♡.221.142) 24-07-03 10:05 
477강-YouTube강의(시간과 공간의 지혜 전도서 1:9)20240702-이 근호 목사


제476강, ‘시간과 공간의 지혜’. 시간과 공간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원래 취지는 몰라요. 다만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내 위주로 내 편리한 위주로 끌어당기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지혜라고 우겨봅니다.

그런데 전도서 1장부터 전도서를 계속 보면 전도서의 내용이 인간의 지혜를 지혜 같지도 않게 처리해요. 인간을 지혜로 보질 않아요. 이 전도서를 누가 썼느냐 하면 다윗의 아들이 썼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그럼 다윗의 아들이 누구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 잘 아시죠. 열왕기상 10장 3-6절을 보면 거기 솔로몬이 누굴 만나요. 스바 여왕을 만납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만날 때 스바 여왕은 나름대로의 자기 계획을 가지고 만난 거예요. 못 믿겠다. 뭐를 못 믿겠냐? 인간이 이 우주의 지혜를 안다는 것을 내가 못 믿겠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나서 인터뷰해보고 조회를 해봐야 그제야 나는 솔로몬의 소문이 과연 그렇다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 스바 여왕이 먼 길에서, 이집트보다 더 멀리 남쪽에서 스바 여왕이 왔습니다. 와서 10장 1절에 보면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어려운 문제로 시험코자 하였다. 자, 여기서 어려운 문제라 하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인간 입장에서 어렵다,의 한계점에 있는 것들을 이젠 그걸 다 긁어모아서 ‘쏘세요’ 하는 것처럼 솔로몬에게 던져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소문에 솔로몬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걸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쁜 거예요. 왜냐하면 같은 인간인데,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그런 혜택 입었고 자기는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인간들이 아는 것 중에서 좀 똑똑한 것. 그러니까 그게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 거예요. 질투심이 발동되는 겁니다. 네가 뭔데?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특별한 것을 네가 알아? 하나님이 너에게 특별 대우했다 이 말이야? 내가 가보겠어! 곧 기다려. 내가 그 허점을 들통 낼 테니까.

그러니까 스바 여왕이 지식에 대해서 굉장히 호기심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하나는 그것을 평소에 찾아다니면서 가짜라는 걸 온통 들추어낸 경력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죠. 그래서 3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어렵고 어려운 질문들을 모아서 다 ‘쏘세요’ 해서 쐈는데 거기에 대해서 묻는 말에 다 대답하니까 “왕이 은미하여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그래서 6절에 보면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그걸 완전히 능가한다. 그걸 뛰어넘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스바 여왕이 우리를 대표해서 자기가 직접 목격한 솔로몬에 대한 그러한 경험담을 소개했는데, 우리의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죠. 도대체 솔로몬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데 그렇게 감탄하느냐? 뭐 시시한 것 가지고 혼자 감탄하지 말고. 우리한테는 뭐 뻔할 뻔자가 아니냐. 이럴 수가 있거든요. 갑자기 우리도 호기심이 확 동한단 말이죠.

솔로몬의 지혜가 어느 정도냐? 그게 전도서에 나옵니다. 전도서 1장 4-6절을 보면 인간의 지혜를 능가하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갖고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드디어 가 나오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해놓고,

그다음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도대체 솔로몬의 지혜가 뭐냐?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뭐냐? 만물이 피곤하다는 거예요. 그 만물 중에 누구도 포함되어 있죠? 인간도 포함되어 있죠.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알아챈 것이 뭐냐? 야 참, 너 피곤하게 산다, 정말. 피곤하게 산다는 말은, 해도 해도 쓸데없는 짓, 소용없는 짓을 매일같이 반복한다는 말이에요. 마치 뭐처럼? 강물처럼. 뭐처럼? 바람처럼. 뭐처럼? 해처럼 달처럼. 모든 만물이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피곤하다는 말이죠.

그리고 9절에 보면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여기 9절에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이 피곤함은 뭐로 보충이 되고 뭐로 쇄신이 되고 개선이 된다는 말입니까? 뭐만 나타나면? 새로움만 나타나면 된다. 새로움만.

그런데 지금 솔로몬은 무엇이 지혜냐 하면 이 세상 만물을 볼 때에 새로움이  없다는 거예요. 그걸 달리 이야기하면 ‘새로움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솔로몬이 은근히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너 피곤하지? 나도 피곤해.” “아이고, 임금님 정도는 안 피곤하죠.” 그러면 솔로몬이, 이 전도서에도 나와요. “너 나 알아? 내가 공부 많이 한 거 너 알지? 내가 책 많이 읽은 거 알지? 글 많이 쓴 거 알지? 내가 과수 재배하고 천하의 내가 생물학에 대해서 모르는 거 없는 거 너 알지?

그런데 내가 늙어죽는 거하고 너 늙어죽는 거하고 똑같아. 무식한 너희들이나 똑똑한 나나 인간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똑같아.” 그걸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똑같아.” 이 만물도 똑같아. 만물도 피곤하지만 나도 피곤하고 너도 피곤하고 피곤한 점은 모든 것이 다 똑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뭐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everybody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새로운 것이 이 땅에는 없다는 거예요. 새로운 것이 없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도서 마지막을 그렇게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지막은,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 계명이 언젠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 성취시켜줄 거야. 그전에 새로운 것이 오기 전에, 우리는 원 없이 헛되고 원 없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내가 아는 지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과 무엇의 차이냐 하면 새로움과 옛것의 차이. 이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 차이. 그래서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뭐냐 하면 옛것은 옛것의 헌 마음으로 인정하고 인지하고 알고 있고 거기에 근거해서 새로움을 기다리는 그 마음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마음자세인 겁니다.

이 청년들아.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네 욕망을 달성할 수는 없어. 전도서에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나와 있죠. 7장 2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념하라” 언젠가는 우리가 이 만물처럼 제거되고 내가 없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 새로운 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은퇴해야죠. 그 새로움이 누구겠어요? 말씀의 완성이 누구겠습니까? 예수님.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 언약을 받은 언약 속에 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 언약을 아는 사람은 이 지혜가 언약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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