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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23:44:54 조회 : 390         
유튜브(262강, 263강) 인생의 짐, 크리스마스 181218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262강       음성             동영상


263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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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아(IP:122.♡.170.138) 18-12-19 19:34 
262강-YouTube강의(인생의 짐)20181218-이 근호 목사

 

제 262강, 제목은 ‘인생의 짐’입니다. 보통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개인을 단독으로 인생이 뭐냐고 그렇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각자 자기 인생을 주장하는 것을 조사해보면 다들 고생 다 했어요.

 

자기 인생이 고생스럽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고 계속해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동정심을 자기에게 보내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불쌍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 말은 계속해서 자기에게 우호적이죠. 자기를 옹호하려고 하고 자기를 응원하려고 하고 너무 일방적입니다. 그래가지고 인생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아요.

 

누구에게 마이크 대고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사람도 자기이야기 하고, 본인도 자기이야기 하고, 그 외의 경우의 수를 두 사람, 열사람, 백사람 계속해서 늘여봐야 고생했던 자기의 지난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 말이죠. 그럼 성경에서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성경에서 인생을 볼 때에는 하나님이 조성한 상황이 있어요. 환경이 있어요.

 

그 환경 안에서 인생이 비로소 밝혀집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거예요. 이 말은 인간들이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를 의도적으로 꾸며놓은 그런 세팅 같은 것이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아주 모델이 되죠.

 

우리가 오늘 봐야 될 것은 예레미야 5장 1절에 대해서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에서 몇 구절을 찾을 건데요. 우선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여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내가 이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게 예레미야 5장 1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방금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익히 아는, 벌써 사전조사가 끝난 상태입니다. 3절에 보면, “그 얼굴은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절,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예레미야 5장을 보고 있잖아요. 예레미야 5장에서 하는 이야기를 보류하고, 산에 등산가서, 등산가게 되면 등산길이, 산책로가 원래 하나밖에 안나있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이렇게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죠. 그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할 때에 친구들하고 재잘재잘 대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예레미야 5장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들은 친구하고 등산하고 식사하면서 계속 누굴 만나서 이야기가 그렇게 꽃이 피는데,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도 정작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어요. 자기 인생이.

 

예레미야 5장을 계속 더 읽어보면, 12절에 보면 아주 노골적인 말씀을 직접적으로 주께서 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고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 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요” 13절,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다는 이야기는 곧 무엇과 연결되느냐 하면은 이 인간세계에는 재앙은 없다는 겁니다. 속닥거리면서 재잘거리면서 곧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재앙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친구하고 아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이 거리에 커피카페가 얼마나 많습니까? 카페에 가서 아무 테이블이나 녹음기 대고 그들의 하는 대화를 한번 들어보세요. 전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한지 재앙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뭔지를 몰라요.

 

그런데 예레미야 4장 19절에 보면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까 한 것은 5장이고 방금 한 것은 4장이거든요. 제목이 ‘인생의 짐’이다 이 말이죠.

 

그럼 예레미야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남들이 갖고 있지 않는 기상예보 하듯이 예고적이고 예보적인, 그러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예레미야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모델에 속한다 보시면 돼요. 성도라 해가지고 교회 가서 노닥거리고 놀고 하는 그게 성도가 아니에요.

 

성도란 성경에 주신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가 겪었던, 예레미야가 느꼈던, 예레미야가 체험했던 것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동일하게 이 시대, 2018년도 이 겨울 이 시대에 똑같이 느끼게 하는 사람, 그것이 말씀이 작렬하는 같은 공간에 소속되어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개인적인 희망이 좌절되고 개인적인 욕심이 끊어져서 인생 울고불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레미야같이, 이 시대 이 상황 자체가 그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이 세상의 원칙을 놓쳤다는 것을, 성도만은 이걸 꿰뚫고 있어야 돼요. 성도만은 꿰뚫고 있어야.

 

요리전문가가 골목에서 식당 하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죠. 저래서는 손님이 안 온다고 이렇게 답답해하잖아요. 그럴 때는 뭐라고 합니까? 요리전문가는 그 사람의 식당을 꿰뚫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죠. 꿰뚫고 있다. 전문가니까요.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을 분별하는 전문가입니다. 예레미야 같아요. 보통사람들은 자기 개인만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문제에 울고불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4장 19절에서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다. 이거는 뭐 개인적으로 사기당해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에게 인생의 짐이 짊어져있는 거예요. 그 인생의 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있는 짐, 이 짐의 원형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졌던 인생의 짐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사적으로 잘 먹고 잘살라고 일했습니까? 이 땅에 나타났습니까?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개인의 영달을 취하기 위해서 가슴 아프게 답답해하는 거예요? 돈 뜯긴 적 있습니까? 사기당한 적 있습니까? 그거 아니죠. 내 인생 없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령 같은 존재에요. 자기인생 없어요. 성도의 존재자체가 예고적이고 예언적 소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가 복음 믿고 잘 먹고 히히낙락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갔던 그 길을 가는 거예요.

 

끝으로 예레미야 5장 1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 넓은 거리에 가서 한 사람이라도 진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이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그 말씀을, 성도는 자기인생의 짐으로 져야 됩니다.
 이미아(IP:122.♡.170.138) 18-12-19 19:36 
263강-YouTube강의(크리스마스)20181218-이 근호 목사

 

제 263강, 제목은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짜가 12월 25일로 되어 있습니다. 날짜를 12월 25일로 정했다는 것은 그렇게 정한 본부가 있을 거예요. 정한 본부가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이 없는 거죠. 성경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없기 때문에. 성경에는 없는데, 복음에는 들어있지 않는데, 교회는 그걸 지킨다는 이 말은 교회가 복음과 결별 선언했다. 이래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교회보고 한번 물어봅시다. 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로 정했습니까? 라고 하면, 사람을 천국보내기 위해서 그렇게 아이디어를 했다는 거예요. 지금 천국에 누굴 보내고 안 보내고 하는 결정은 천국에서 결정해요. 천국이 본부에요. 교회가 본부가 아니고.

 

천국에서는 그런 날짜를 정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정했다는 말은 그 자체가 뭐냐 하면 교회가 사람들에게 가짜 천국을 이미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는 단체라고 보면 돼요. 더구나 그 크리스마스 때 하는 일이 뭐냐, 이웃을 돕겠다는 겁니다. 딸랑딸랑 냄비하나 놓고, 라면 먹고 갈래요? 할 때 냄비 필요하잖아요. 그 냄비하나 놓고 냄비에다가 돈 모아서 이웃을 돕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뭐가 문제냐 하면은 인간이 지옥가야 될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희석해버려요. 이게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지옥이냐 천국이냐가 아직 결정 안 됐다고 우기는 겁니다. 교회에서. 교회 다녀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천국이고, 주님 안 사랑하면 지옥이라는, 그런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중립지역, 중립적인 권한이 자기가 갖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주님을 죽여요. 예수님의 탄생의 특징은 뭐냐,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른다는데 그 의미가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데. 동방박사는 알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는데, 동방박사가 어디 내비게이션 갖고 왔어요? 뭐 갖고 왔습니까? 별이 떴잖아요. 별이 떴고, 별이 인도하지 않으면 동방박사는 무능한 자들이에요. 아무 능력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 말은 동방박사에게도 아기예수의 의미는 감추어진 겁니다. 아는 존재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악마입니다. 악마만 알아요. 악마가 아주 발작을 했어요. 어떤 분이 마태복음 2장을 보면서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번 제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날 즈음에 두 살 밑에 남자아기는 다 죽었어요.

 

뭐, 누가 꼭 집어서 예수님인지 모르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아들로 태어났으니까. 다 죽여 버리면 그 중에 하나 포함이 될 거라 생각한 거예요. 이런 결정을 악마가 했죠. 헤롯이 했잖아요. 헤롯이 그런 결정을 할 때 거기에 희생된 자가 누구냐 하면 베들레헴 두 살 된 애들의 가족입니다.

 

지금 마태복음 2장에서의 베들레헴의 사건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가족 대 가족을 비교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가족이 산겁니다. 근데 예수님이 태어날 때 가족이 그렇게 위태롭다는 사실을 동방박사는 몰랐죠. 예수님이 태어난 가정이 보통 여느 가정이라면 헤롯이 베들레헴에 있는 새로 태어난 남자애들이 있는 가정을 작살낼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예수님의 탄생은 곧 이 세상에 대한 화근입니다.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고요한 밤이에요. 안 태어났으면 가짜 예수 가지고 거룩한 밤을 찬송하면 그만이에요.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에요. 안 태어났으면. 차라리 예수님이 태어나지 않고 가짜 예수가 태어났다고 다들 그렇게 느끼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아주 경건 된 크리스마스이브가 될 겁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그거에요.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예수이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모실 수 있는. 경건하고 이웃사랑하고 딸랑딸랑 자선냄비 걸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룩하고 고상한 것을 총동원해서 저 하늘에 높이 계신 분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찬스를, 그런 계기를 우리한테 허락해 달라고 크리스마스를 만든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예수님이 태어난 자체가 이 땅에 화평이 아니고 분란을 일으킨다는, 그런 식으로 막가지 말고 우호적으로 하자는 겁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것이 말썽이 안 되도록, 점잖은 우리의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평화롭게 아기예수를 좀 모실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 그 요청이 크리스마스에요.

 

그렇다면 조용하게 하겠다는 것과 헤롯처럼 발작을 일으켜가지고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 마을을 작살내는 것과 성격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똑같죠. 가짜 예수라는 점에서 똑같은 거예요. 조용하게 가자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요란스러운 것을 배제하는 것이고, 그리고 요란스럽게 하는 것은 평화를 지키겠다는 헤롯의 신념이고.

 

그럼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마태복음 2장 18절,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왜 여기서 라헬이라는 말을 집어넣었느냐? 라는 질문을 저한테 한 적이 있어요. 라헬을. 라헬은 누구의 아내냐 하면은 야곱이 사랑했던 본처가 라헬입니다. 야곱이니까 이름은 나중에 뭐로 바뀌어요? 이스라엘이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는 것은 본인이 시작한 일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아기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통곡의 마당에 본의 아니게 참여된 자들이 뭐냐, 바로 오늘날 진정한 교회입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이에요. 시작을 예수님 쪽에서 이미 시작한 거예요. 예수님하고 악마가 시작을 한 겁니다.

 

그러면 진정한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생산된 거예요. 티가 나고, 예수님의 탄생이 이 세상에 파급될 그러한 비극을 그들은 몸소 체험한 자들이 진정한 오늘날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보통 12월 25일 아니에요. 성도의 매일의 삶이 크리스마스에요. 주님 때문에 이 땅에서 곡해와 오해를 받는 그 삶, 그게 매일매일 크리스마스입니다.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 때문에, 복음의 기쁨만 기쁨이고 나머지기는 그 기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혹독하게 체험케 되도록 주님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사람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성탄의 의미를 듬뿍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걸어 다니는 성탄절이에요.

 

그러면 왜 교회가 성탄절을 지키고 하느냐? 교회라는 것은 망하라고 있는 겁니다. “아, 저래서 교회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그냥 이론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체험하라고 우후죽순처럼 교회들이 많이 일어났고, 그들의 이천년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 크리스마스고. 크리스마스에서 그 가짜예수에 동참시키려고 루돌프, 아무 죄도 없는 사슴까지 동원시키잖아요.

 

루돌프에다가, 하얀 수염 난 할아버지 산타클로스까지, 온갖 트리까지 다 동원시키죠. 굴뚝까지 등장하고, 긴 양말까지. 온갖 문화들이 거기에 총결집되니까, 크리스마스도 문화지만 교회자체가 문화센터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예를 오늘도 이 겨울철에 맞이하고 있습니다. 빠진 게 있어요. 하얀 눈. 운치 있게 하얀 눈까지 기대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그것은 곧 악마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마음껏 보여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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